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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선원장 석암 강희준 스님 ‘증산 강일순 상제의 성해는’ 펴내

유물 전해준 진주강씨 23대손 선친과의 약속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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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기자
기사입력 2019-05-17

 

 

 

유물 전해준 진주강씨 23대손 선친과의 약속 지켜    

증산계열 종교들의 정통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자리매김

 

충북 충주 고불선원의 선원장인 석암 강희준 스님이 1921년부터 해방 후까지의 증산 상제 성해(聖骸)에 관련된 문서(서찰)들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증산 강일순 상제의 성해는’(뱅크북 · 20.000)을 펴냈다.

 

석암 스님과 증산상제와의 인연은 깊다. 고불선원엔 문화재급 유물 2만점이 소장 되어 있는데 지난 2012년 증산교의 기본경전인 대순전경의 육필 원고가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기존 경전에는 없는 내용들이 담겨 있어 증산교 계열 종단을 비롯한 종교계에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증산교는 일제 강점기에 100개에 가까운 교파와 수백만의 신도를 거느린 종교세력으로 성장했던 적이 있다. 현재도 대순진리회·증산도 등의 현대화되고 능동적인 거대 종교조직과 많은 분파로 확산되고 있다. 그들의 기본교리인 대순전경의 뿌리가 밝혀짐으로써 증산계열 신흥종교들의 정통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어 관심이 증폭된 것.

 

육필 대순전경은 총 13489252면표지 2, 잡가 512, 증산대선생 약사(略史) 문답 4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생존시에 강증산을 만난 인물 중의 한 사람인 김일부(金一夫1826-1896) 대성사의 궁을가(弓乙歌)’(不死藥이라고 함) 등도 담겨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1938년 조선총독부의 유사종교해산령으로 1945년 광복까지의 증산교 활동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가운데 이 당시를 서간체 형식의 33장의 문건은 귀중한 자료로써 평가받았다. .

현존하는 대순전경은 1929년 이상호(李祥昊1888-1967), 정립(正立) 형제가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의 행적과 가르침을 수집,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출판된 대순전경은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많은 부분이 누락, 변경됐으며 광복 후에 나온 인쇄본도 이상호가 원본및 수집본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대순전경 원본은 이상호의 죽음과 함께 불 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었다.

▲ 석암 스님은 마침내 ‘증산 강일순 상제의 성해는’을 펴냄으로써 선친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자부한다. 이에 이 책에 대한 홍보에도 힘을 쏟고 있다. 여주대순진리회의 이태열 선감 등 교무부 연구실 관계자들과 함께 책을 펼치고 있는 사진을 찍고, 지난 12일 부처님오신날에는 영화배우 손화령이 고불선원을 찾아와 책과 함께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탤런트 손화령은 ‘얄개전’ 주인공이었던 배우겸 감독 故 손창호의 장녀인데 그가 석암 스님의 소꼽동무이기도 해 죽은 친구와 선친 생각에 울컥했다고 했다.     © 매일종교신문

 

그리고 이번에 또 다시 증산상제와 연관이 있는 여러 증빙(證憑)을 모아 정리한 증산 강일순 상제의 성해는을 발표함으로써 더 큰 의미를 찾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선친 때부터 증산상제와의 인연이 이어져왔다.

 

그의 선친은 그가 어릴 때 각종 유물은 건네주며 만일 내가 먼저 죽고 난 후라도 이 보따리 묶어 놓은 것을 소중하게 여겨라. 네 나이가 60이 넘었을 정도면 그때 살펴 보거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온갖 압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선친이 남겨준 소중한 보따리를 지켜왔다.

 

60살이 넘어 대순전경천심경을 공개한데 이어 마침내 증산 강일순 상제의 성해는을 펴냄으로써 선친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기쁨이 샘솟는다.

 

선친은 진주강씨(晉州姜氏) 23대손인데 증산상제(강일순) 어른도 가까운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중한 유물들이 선친한테 전해지고 아껴 보중해 24대손인 자신에게 맡겨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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