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권토중래'와 검찰 개혁

크게작게

문윤홍 논설위원 2017-05-24


"그냥 물병 하나, 건빵 한 봉지 들고 사막에 가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막 임명된 박영수 특별검사가 '영입 1호'로 윤석열(57·사법연수원 23기) 당시 대전고검 검사를 지목했을 때, 그는 자신의 심정을 이같이 표현했다. 살아있는 권력에 맞섰다가 인사 보복을 당한 그의 굴곡진 검사 생활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모래 언덕을 묵묵히 홀로 걷는 것과 같았다. 

그랬던 그가 5월19일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전격 승진·발탁된 것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검찰 내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윤석열 신임 지검장 스스로도 "갑자기 이렇게 좀 너무 벅찬 직책을 맡게 돼 깊이 고민 좀 하겠다"고 했다. 서울대 법대 4학년 시절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한 윤 지검장은 이후 9년간 2차에서 연거푸 낙방했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뒤늦게 합격, 1994년 34세로 검찰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현재 주요 직책에 있는 동기들과 많게는 9살이나 차이가 난다.


 '늦깎이'로 들어왔고 한때 1년간 대형 로펌 변호사로 잠시 '외도'도 했지만 윤 지검장은 지난 20여 년 동안 검찰을 대표하는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탁월한 수사력과 추진력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 중수 1, 2과장을 거쳐 2012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까지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비호 의혹, LIG그룹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의혹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친 사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오른팔' 안희정 현 충남지사와 '후원자' 고(故) 강금원 회장을 구속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시련을 안겨준 것은 박근혜 정권 초기이던 2013년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시절 맡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었다.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된 그는 정권의 눈치를 보는 윗선의 반대에도 용의 선상에 오른 국정원 직원을 체포하는 등 소신 있는 수사를 하다가 결국 지방으로 좌천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해 10월 국감에 나온 윤 지검장은 수사 강도를 낮추기 위한 검사장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성 주장을 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그가 남긴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그의 대쪽같은 면모를 상징한다. 정직(停職) 1개월의 징계를 받고 관련 수사에서 배제됐던 윤 지검장은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을 전전했다. 당시 함께 징계를 받고 결국 옷을 벗은 그의 '오른팔'이 바로 박형철(49· 25기) 신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다.

그렇게 '관운'이 다 하는 줄 알았던 윤 지검장을 다시 수사 일선으로 불러들인 것은 그와 중수부 한솥밥을 먹었던 박영수 특검이었다. 특검 수사팀장을 맡은 윤 지검장은 물 만난 고기처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국정 농단'에 연루된 사회 각계 인사들을 거침없이 수사했다. 이는 윤 지검장과 특검팀에 대한 국민의 대대적인 지지로 이어졌고, 결국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야말로 권토중래(捲土重來)한 결과였다.

이날 윤 지검장에 대한 인사는 기수와 계급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인사로 평가된다. 서울중앙지검장은 2005년 이후 고등검사장급이 맡아왔지만, 윤 지검장은 올해 한 계급 아래의 검사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청와대는 인사 발표와 함께 서울중앙지검장의 직급을 검사장급으로 환원한다고 밝혔다. 이는 고검장급인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 승진을 위해 권력 눈치를 보며 수사 지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을 불식하기 위한 조치다.

윤 지검장 개인 입장에서는 중앙지검장 발탁이 '기회'이면서도 새로운 '도전'이 될 전망이다. 

대통령과 검찰 완전 절연하는 자세로 검찰 개혁해야     

'돈봉투 회식' 파문 당사자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5월18일 사의(辭意)를 표명했으나 감찰이 끝날 때까지 사표는 수리되지 않는다.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 검찰 개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09년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2년 뒤 검찰 개혁과 관련한 책을 쓸 만큼 검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을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생각하는 적폐 중 최고 거악(巨惡)은 검찰일 것"이라고 했다 한다. 상당수 국민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검찰이 거악이 된 이유는 많겠지만 근본은 대통령들이 검찰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려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검찰을 시켜 밉보인 사람들을 공격한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지난 정권에서 청와대 하명 수사 와중에 두 사람이나 자살했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은 얼마 전까지 자신을 부리던 전직 대통령을 공격한다. 검찰은 대통령의 칼 노릇을 해주는 대가로 다른 부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특혜를 누려왔다. 권력도 무소불위였다. '우병우 수사'가 잘못됐다는 비판이 비등한 가운데 검찰 핵심 간부들이 서로 격려하면서 돈봉투를 돌릴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잘못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대통령·검찰의 공생 구조 아래에서 통상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공수처를 신설하고 검·경(檢警) 수사권을 조정해 검찰 권력을 제한다고 한다. 큰 방향은 맞는다. 그러나 그에 앞서 대통령과 권력기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 어떤 개혁을 해도 '거악'은 그대로일 것이다. 대통령과 검찰의 완전 절연(絶緣)은 일차적으로 검찰총장 임명을 사실상 대통령 인사권 밖에 둠으로써 총장이 특정인이 아닌 국가와 사회에만 충성하게 하는 것이다.

한편, 5월15일 검찰을 떠난 김수남(58·사법연수원 16기)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검찰 개혁에 대해 “국민을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검찰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는 국제적 추세를 참고해 수사의 중립성과 공정성,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을 건넸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검찰 개혁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김 전 총장은 “법조를 포함한 각계의 의견에 폭넓게 귀를 기울이고 형사사법의 국제적 추세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찰 개혁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가 기준이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근대적 검찰 제도는 시민혁명의 산물로 국민의 인권을 옹호하고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게 김 전 총장의 평소 지론이다.  경찰이 법률 전문가인 검찰의 통제를 받지 않겠다고 주장하거나 정부가 수사권을 경찰에 몰아주는 방식은 검찰 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김 전 총장은 검찰이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전제로 원칙·절제·청렴을 제시하며 철저한 자기반성도 촉구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난 김 전 총장의 마지막 조언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윤홍·시사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기사입력 : 2017-05-24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뒤로가기 홈으로

가장 많이 읽은 기사

URL 복사
x

PC버전

Copyright ⓒ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