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낳는 박항서 감독…어떻게 베트남 ‘국민 영웅’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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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홍 대기자 2018-12-28

축구대표팀 맡아 승승장구…AIA선정 ‘2018 아시아 올해의 인물     

그야말로 ‘박항서 신드롬’이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10년 만에 스즈키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자 베트남 전역이 흥분에 휩싸였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을 연상시키듯 밤새도록 축제가 펼쳐졌다. 박항서 개인을 넘어 대한민국에 대한 찬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2018년 한 해 박항서 감독은 스포츠계는 물론 사회·경제·문화계 전반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베트남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그는 한국과 베트남을 이어주는 민간 외교관으로서도 최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박항서 감독은 아시아기자협회(AJA)가 선정한 ‘2018 아시아 올해의 인물’이 됐다. AJA는 ‘2018 아시아 올해의 인물’로 박항서 감독 등 4명을 선정했다고 12월20일 밝혔다. 사회·문화 부문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박항서 감독은 솔선수범 리더십을 통해 베트남 축구 발전과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이끌어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AIA는 박항서 감독과 함께 사회, 문화 부문에서는 개발도상국 환자들을 치료해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한 이집트 흉부외과의사 하비브 야콥, 정치 부문에서는 인권 개혁과 경제 개방·개혁에 앞장선 샷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경제 부문에서는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국내에선 ‘시사저널’이 스포츠 분야 ‘올해의 인물’에 선정했다.
▲ 12월15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의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의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승리한 뒤 박항서 감독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항서, 히딩크 보좌해 2002 韓·日월드컵 신화 일궈내


2017년 9월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맡은 박항서 감독은 연령별 대표도 함께 맡으면서 ‘박항서 매직’의 시작을 알렸다. U-23 대표팀을 이끌며 숙적 태국을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2018년에도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결승에 진출했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4강에 올라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 후 스즈키컵 우승으로 동남아시아 최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박항서 감독이 축구 인생에서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축구와의 첫 인연부터 다른 선수들보다 늦었다. 지리산 산골에서 자란 그는 고교 입시 때까지는 운동선수를 꿈꾸지 않았다. 당시 1차로 지망했던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2차로 지망했던 고교에 들어가 축구 인생을 뒤늦게 시작한 것이다.

늦게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U-20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럭키금성 창단 멤버로 프로축구 초창기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다. K리그 통산 115경기에 출장해 20골 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현역 시절 그의 별명은 ‘밧데리’(배터리)였다고 한다.     

▲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박 감독은 1989년 일찌감치 럭키금성 코치로 변신해 지도자 수업에 들어갔다. 럭키금성을 나와서는 미국월드컵 국가대표팀 트레이너와 수원 삼성 코치를 지냈다. 그의 축구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아 월드컵 4강(强) 신화를 일궈낸 것이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의 ‘형님 리더십’은 한·일월드컵을 통해 재평가 받았다.

같은 해 열린 부산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감독을 거쳐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로 지내던 박 감독은 2005년 생애 처음으로 프로팀 감독을 맡아 홀로서기에 나섰다. 도민구단인 경남FC였다. 신생팀을 맡아 돌풍을 일으키면서 히딩크 감독의 그늘에서 벗어나 ‘박항서 신화’의 싹을 틔웠다.

하지만 싹이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다. 2007년 경남FC를 떠나 전남 드래곤즈에 이어 상주 상무 감독에서 물러난 2016년, K리그에서 더 이상 그를 찾는 구단이 없자 창원시청 감독을 맡게 됐다. 이로써 축구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때 박 감독의 부인이 동남아시아 쪽이라도 알아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고 마침 베트남에서 그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낙점하면서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 모집 당시 전세계에서 300명 가까운 지원자가 응모했다고 한다. 면접 때 박항서 감독은 작은 키를 어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가 작은 자신이 베트남의 키 작은 선수의 비애를 잘 알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베트남만의 축구 스타일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결국 베트남은 그를 선택했고, 이 선택은 최상의 결과를 낳았다.  
▲ 12월15일 하노이의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베트남 관중들이 태극기와 박항서 감독의 사진판 등을 들고 응원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베트남에서 ‘박항서 효과’ 거둬

‘박항서 신드롬’이 불러온 베트남의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은 한국 경제에도 특별한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베트남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는 ‘박항서 정신’을 경제발전 모델에 넣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쑤언푹 총리가 베트남 산업지원 육성을 위한 솔루션 개발 회의에서 “박항서 감독이 축구를 통해 베트남에 위대한 업적을 쌓았던 방법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비전을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베트남 경제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박항서 감독의 성공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베트남은 한국 경제와의 교류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집중되는 곳이기도 하다. 박항서 열풍은 베트남 시장 공략에 나선 한국 기업 입장에서 더없는 호재다. 베트남 전체 TV 시장 점유율 40%대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박 감독을 TV 광고 모델로 낙점해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LG전자도 베트남 법인 홈페이지 초기 화면을 축구 경기에서 환호하는 선수와 응원단으로 설정해 놓는 등 박 감독을 활용한 축구 마케팅에 공을 들였다. 동아제약은 박 감독의 이름과 발음이 거의 같은 자양강장제 박카스를 베트남에 론칭해 4개월 만에 판매량 280만 개를 돌파했다. 국내 유명 치킨의 호찌민 1호점 매출이 한 주 만에 120% 상승하기도 했다. 주류 업체도 베트남 시장에서 ‘박항서 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다. 베트남에서 만개한 ‘박항서 리더십’이 한국에 훈풍을 불러오고 있다.  

박항서 ‘파파 리더십’은 한국에서부터…소소한 일도 함께 경험하고 챙겨줘

창원시청 코치·선수가 본 박항서 감독…최명성 “대표팀 출신이 3부리그 맡아 놀라”“경기 전날 감독님과 함께 목욕탕에 갔다. 생일인 선수에게 손 편지를 적은 책을 선물해줬다.”     

실업축구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미드필더 태현찬(28)은 요즘 자기 일처럼 기분이 좋다. ‘옛스승’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의 활약을 보면서 그렇다. 박 감독과 함께 했던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베트남을 동남아 축구 국가대항전 스즈키컵 정상에 올려놓은 박 감독은 2017년 1~9월 창원시청 감독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 코치로 4강 신화에 힘을 보탰던 박 감독이 1, 2부가 아니라 3부리그 격인 내셔널리그 팀을 지휘한 것이다.

박항서 감독은 당시 창원시청 선수들에게 국가대표 못지않게 정성을 다했다. 베트남 선수의 발마사지를 직접 하고, 부상선수에게 자신의 비즈니스석을 양보했던 ‘스킨십 리더십’은 그의 몸에 밴 제2의 천성이었다. 박 감독은 진심을 다해 창원시청 선수들을 대했고, 선수들은 그 진심을 기억했다.       

태현찬은 “박항서 감독님은 경기 전날 선수들과 목욕탕에 가서 함께 사우나를 했다. 박 감독님이 ‘남자는 서로 알몸으로 함께 씻어야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다’고 하셨다. 베트남 대표팀을 맡기 훨씬 전부터 선수들에게 말보다 스킨십으로 다가섰다”고 회상했다. 이어 “선수들이 생일을 맞으면 감독님이 서점에서 직접 산 책을 선물로 주셨다. 선수마다 어울릴 것 같은 책을 제각각 골라주셨고, 책 표지 안쪽에 직접 손편지를 써주셨다”고 전했다.     

박항서 감독은 2017년 9월14일, 생일을 맞은 태현찬에게 ‘나를 낮추면 성공한다’는 제목의 책을 선물했다. 책 표지 안쪽에는 ‘생일 축하한다. 항상 성실한 자세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년에는 단점을 보완하여 좋은 활약 기대한다’고 손편지를 적었다. 태현찬은 “선수들 모두 손편지를 읽으면서 감독님이 주시는 메시지라 생각하고 더 노력했다”고 말했다.

창원시청 코치로 박항서 감독을 보좌한 최명성(36·현재 부산교통공사 코치)은 “박 감독님이 창원시청 감독으로 처음 오셨을 때 워낙 높은 곳을 경험한 분이라 걱정했다”며 “그런 박 감독님이 코치진과 선수들 정말 진솔하게 인간적으로 대해줬다. 쉬는 날 함께 영화도 보고 치킨도 시켜 먹었다. 자기 옷이나 신발을 사러 가서 선수나 코치 옷을 함께 사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가족처럼 돈독해진 팀 분위기 덕분이었을까. 창원시청은 2017년 6월, 13년 만에 내셔널리그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최 코치는 “우승축하 회식 때 러브샷 자리에서 박 감독님이 볼 뽀뽀로 애정을 표현하셨다”며 “요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면 바쁠텐데도 ‘항상 열심히 해라. 팀을 옮겼지만 힘내라’고 답장하신다”고 소개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보여줬던 ‘파파리더십’에 대해 “나는 리더십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저 누구에게나 진정성 있게 대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하자 최명성 코치는 “박 감독님의 성공을 보면 내일처럼 흐뭇하다. 감독님은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아시안컵을 포함해 계속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고향 산청군 지인들 “소탈하고 베푸는 박 감독 리더십, 어머니가 물려줘”    

“항서는 절대로 물에 가지 마라. 물에 가면 안 된데이.”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이끌며 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의 모친 박순정 여사(96)에게는 2019년 환갑이 되는 막내아들 항서에게 아직도 이런 걱정의 말을 한다. 박 감독이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고향인 경남 산청군 생초면에는 강정이라는 곳이 있다. 남강의 본류인 경호강과 엄천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박 감독의 고향 선배 배성한 씨는 “강정에는 어린 시절 박 감독을 비롯해 동네 선후배들이 많이 어울렸던 백사장이 있는데 가끔 익사 사고가 난다. 박 감독 모친께서는 강정 백사장에서 뛰놀던 아들 걱정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 여사는 다리가 불편하고 치매 증상이 있어 산청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직후인 지난 9월에 박 여사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 산청의 한 요양원에 있는 박 감독의 어머니 박순정 여사 지난 2월27일 허기도 산청군수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박 여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축구 4강전 베트남과 한국전(한국 3-1승)을 요양병원에서 지켜봤다. 전담 요양사는 “박 감독이 화면에 비칠 때마다 박수를 치고 기뻐하셨다”고 했다. 박 여사는 아들이 베트남 우승을 이끈 스즈키컵도 지켜봤다.  

박 감독의 고향 지인들은 박 감독이 모친의 기질을 꼭 닮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고향 친구 박재식씨는 “박 감독의 어머니가 지금으로 얘기하면 ‘여걸’ ‘여장부’다. 경남 사천시 축동면 출신이라 ‘축동댁’으로 불리셨는데 억척스럽고 당차면서도 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 옛날에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나오셔서 자식 교육열도 대단했던 분”이라며 “주위에 늘 사람이 많고 리더십도 있는 박 감독은 어머니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내려놓고…지금도 내려놓는 축구 인생 

박 감독은 부모가 고향에서 약방을 운영(약사는 아님)해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다. 생초초등학교에서 축구를 하면서 공부를 병행했던 박 감독은 서울 경신고에 진학해 당시 이경이 축구부 코치를 찾아가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의 인생을 시작한다.

남들보다 늦게 뛰어든 엘리트 축구 선수의 길. 불도저 같은 투지와 왕성한 활동량이 돋보이는 미드필더(링커)로 청소년 대표를 거쳐 한양대와 실업 제일은행, 프로 럭키금성(FC서울의 전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조광래, 박창선 등 당대 같은 포지션 스타들과의 경쟁에서 이름값에 밀려 1980년대 국가대표 1진(화랑) 진입의 문턱을 넘어보지 못했다. 경쟁 선수들은 장점이 부각됐지만 박 감독은 이상하리만큼 작은 키와 몸집의 핸디캡이 장점을 가렸다. 국가대표로 뛴 A매치는 단 1경기. 1981년 3월 한일 정기전에서 전반 17분 교체 투입돼 73분간 뛴 게 전부이다. 그가 지금도 가장 아쉬워하는 선수 시절 커리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는 29세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남들이 봤을 때는 급했다. 은퇴한 럭키금성에서 박 감독의 첫 직책은 트레이너. 박재식 씨는 “당시 왜 은퇴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진주 전지훈련장으로 가보니 박 감독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상황이 좋다고 하더라”고 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때 박 감독의 이름 앞에 ‘영원한 트레이너’ ‘영원한 코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감독과 선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능력과 성실함을 높이 평가하는 표현이다. 국가대표 스타 출신이라는 꼬리표만 붙으면 현역 은퇴 후 곧바로 감독도 할 수 있는 시절, 박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프로와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13년간 화려한 조명과는 거리가 먼 트레이너와 코치로 살았다. 박재식 씨는 “한편으로는 ‘내공’이 쌓였겠지만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라고 했다.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으로 대표되는 주류 학연과 지연에 속하지 않는 박 감독에게는 유난히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 많았다. 1994년 트레이너로 참가한 미국 월드컵이 끝난 뒤 대표팀 감독이 바뀌고 코치로 임명됐으나 6일 만에 팀을 나와야 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 신화를 이룰 때 거스 히딩크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았으나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욱이 그해 부산 아시아경기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동메달에 그치자 3개월 만에 경질됐다.

박 감독의 지인들은 ‘인간 박항서’의 축구 인생을 ‘내려놓는 역사의 반복’이라고 말한다. 처음으로 맡은 부산 아시아경기 축구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된 뒤 이듬해에는 후배를 감독으로 모시고 다시 코치로 백의종군했다. 후배 밑에서 선배가 코치를 한다는 건 지금도 드물다. 배성한씨는 “포항 최순호 감독이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서 코치 생활을 다시 하게 됐는데, 박 감독은 그때가 지도자 인생에서 가장 내공을 많이 쌓은 시간이었다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2005년 고향 팀인 경남FC의 초대 감독으로 임명돼 돌풍을 일으키고도 2년 만에 ‘자의 반 타의 반’ 자리를 내려놓았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노래 가사가 생각나는 박 감독의 축구 인생 스토리는 현재도 진행형이라고 지인들은 말한다. 박재식 씨는 “경남FC를 나오고 전남, 상무 감독을 거쳐 창원시청 감독도 했지만 박 감독은 정말 ‘끝나면 빈털터리’다. 그 정도 지도자 생활을 했으면 재산도 모았을 텐데 다 내주고 없다. 베트남도 국내에서 능력 있는 후배들의 자리를 차지하면 안 된다고 해서 간 것”이라고 했다. 박 씨는 “베트남에서도 우승 포상금, 보너스 등을 전부 기부했는데 이런 삶이 박 감독의 운명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스즈키컵 우승의 감격도 잠시, 곧바로 아시안컵 대비에 들어간 박 감독에게 한 가지 마음 편치 않은 일이 생겼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생가를 지켜 늘 마음의 빚이 있었던 형 삼서씨가 최근 식도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박 감독으로서는 다시 한번 기적을 써야 할 동기가 생겼다고 지인들은 말한다. 

◆베트남의 성지된 고향 산청군 생초면… ‘박항서 박물관’ 설립 구상

베트남 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박 감독이 태어난 경남 산청군 생초면 생가가 이제 한국을 찾는 베트남 관광객의 단골 여행 코스가 됐다. 베트남 관광객들이 아예 서울에서 버스를 전세 내서 찾는다. 베트남 현지 항공사와 여행사들의 산청군 답사가 이어지고 있다. 생가는 현재 박 감독의 셋째 형인 박삼서씨가 살고 있다.     

산청군은 '베트남 축구 영웅'으로 떠오른 박항서 감독의 고향임을 내세워 베트남 대상 관광상품 개발과 동계 스포츠 전지훈련팀 유치 등 '박항서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뿐만 아니라 산청군은 박 감독의 생가와 모교인 생초초등학교, ‘생초 박항서 축구장’을 중심으로 박항서 박물관 건립 등에도 착수했다. 생초에 국내 최초로 ‘축구 행정학교’를 세우자는 논의도 있다. 배성한씨는 “축구 선수도 육성하면서 축구 관련 직업에 종사할 수 있는 행정 인력을 양성하는 학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식씨는 “박 감독은 아직 자신의 이름이 마케팅에 활용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초축구장을 ‘박항서 축구장’이라고 이름을 붙일 때도 꺼렸다”고 전했다.    
▲ 산청군이 12월8일부터 9일까지 '산청군 우수농산물 판촉전과 수출상담회'를 열어 170만달러의 수출의향서를 체결했다.    

산청군은 10월에 베트남 항공사와 여행사 관계자를 초청, 지역 명소를 둘러보는 팸투어를 실시한 데 이어 박 감독의 고향마을인 생초면 일원 관광화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아울러 동의보감촌은 물론 베트남인이 좋아하는 산청 딸기와 곶감 농가 체험 코스도 개발할 예정이다. 

실제로 12월18일 베트남의 한 여행사가 창원 소재 여행사에 산청을 포함한 부산·경남지역 관광여행상품 개발을 요청하는 등 현지 여행사의 관심도 부쩍 높아지고 있다.

앞서 12월8일부터 9일까지 산청군은 '박항서 매직' 바람이 불고 있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산양산삼주 등 38개 품목으로 '산청군 우수농산물 판촉전과 수출상담회'를 열어 170만 달러 규모의 수출 의향서를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당시 행사엔 박 감독이 직접 들러 홍보를 돕기도 했다. 여기에다 산청군은 최근 '스포츠 전지훈련 유치위원회'를 열어 2019시즌 동계 전지훈련팀 유치 목표를 전년의 2배로 세웠다. 박 감독 덕분에 국내에서도 크게 높아진 산청의 인지도를 십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산청군은 2019시즌에 축구 등 6개 종목 90개 팀 2300여 명의 전지훈련팀을 지역에 유치할 계획을 세웠다. 이는 2018년 유치한 4개 종목 43개 팀 1131명보다 2배나 된다. 유치활동 예산도 예년보다 대폭 늘어난 1억 9000만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우선 2019년 1월 예정된 '산청CUP 전국유소년 축구동계훈련'과 1월 하순 진행할 '산청 천왕봉배 윈터리그' 참가 팀 유치에도 발 벗고 나선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기사입력 : 201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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