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수의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축제(祝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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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수 2019-09-14

친구 모친이 돌아가셨다. 마침내 가셨구나. 힘든 이승에서 모질게 사시다가 편안한 저승에 영면(永眠)하셨구나. 생전에 한 번 뵙고 손이라도 꼭 잡아드리고 싶었는데. 내 처지가 갑자기 궁색해져 당장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더니. 어머님은 더 못 기다리시고 그냥 가셨구나. 이별의 아픔으로 내 마음이 먹먹해졌다. 어머님! 안녕히 가십시오. 이제야 생전의 너그럽고 여유만만하시던 그분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만년(晩年)의 우리 부부 삶이 지금 비록 순탄치만은 않아도, 친구 모친 향년(享年)과 견주어 어림잡아 헤아려보니, 동갑내기 우리 둘은 앞으로 대략 이십여 년 정도 더 살아가야 할 듯싶기도 하다. 혹시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일어나거나 고약한 병고(病苦)만 아니라면, 상당한 시간의 풍파(風波)를 겪어야 우리 둘은 비로소 저세상으로 갈 수 있을 듯싶다. 더불어 한 몸으로 지내야 할 우리 둘은 그만큼의 세월(歲月)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심코 생각해본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매일 매 순간 변화 속에서 죽음 또한 소리 없이 우리 둘의 삶에 스며들 것이다. 내 옆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아내에게 뻗쳤던 공포 같았던 죽음의 검은 손처럼 생각하지 못했던 위기를 우리는 또 겪을지도 모른다. 처음이라 간신히 살아나 집에 돌아왔다. 하루하루 고마운 마음으로 즐겁게 살다가, 행여 죽음이 다시 찾아오면, 그때는 우리도 자연스러운 축제(祝祭)처럼 그를 흔쾌히 따라갈 준비를 차분히 해야 할 듯싶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출퇴근이나 재활 같은 운동 속에서 고단한 생활을 즐기며, 글쓰기에 몰두할 수 있는 지금의 내 삶이야말로 천복(天福)이 아닐까. 인생의 구렁텅이에 내동댕이쳐진 우리에게 내려준 바로 구원의 사다리일 듯싶다. 의심할 여지 없이, 하늘이 고난(苦難)이라는 천사와 함께 보내온 축복(祝福)임이 틀림없다. 이 속에서 여유롭고 우아하게 살다가 우리 둘 편히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선택한 방향이 그릇되지 않으면, 행복하고 성실히 살아갈 일만 남겨졌다는 생각이 든다.

 

갑천 호수를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떠다니는 오리처럼 매일 느긋하게 자전거를 타고서, 끊임없이 물밑 발길질하듯 나도 쉴 새 없이 페달을 밟고 출퇴근하면서 살아가는 운동 속의 일상이 참 고맙기만 하다.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나만 기다리다가 정신없이 잠에 곯아떨어진 아내를, 이리저리 자세 바꿔주며 놀이하듯 재활하다가, 운동기구에 옮겨 여유롭게 두 팔을 놀리도록 앉혀놓고, 그녀 발 앞에 온몸을 내던지듯 편히 누워 작고 예쁜 발가락을 꾹꾹 누르며 만지작거린다. 진초록 세상의 파란 가을바람을 느낄 수 있는 꿈을 꾸면서, 온 하루를 우리는 사랑만 하다가 둘이 손잡고 그 먼 세상으로 같이 가야겠다. 아마 틀림없이 그럴 수 있을 듯싶다.

 

죽음을 한적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반가운 손님 맞이하듯이

 

나는 오늘도 그녀 앞에 누워, 지난 날 못다쓴 연애편지를 이어서 써내려 간다. 언제까지고 내 긴 사랑의 글쓰기는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한없이 투덜대듯, 읊조리듯, 가끔 흐느끼듯, 우리 사랑을 여과없이 고백하며 살다가, 어둠이 별과 함께 남쪽 밀창으로 찾아들면, 아마 나는 저 먼 동화나라로 그녀의 따뜻한 손을 잡고 훨훨 날아갈지 모르겠다. 따뜻하고 포근한 저세상에서, 우리 둘은 이승에서 지쳐버린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편히 쭉 뻗고, 시름없이 가벼운 미소를 띄며 영원한 행복의 두려움 없는 영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아, 한적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이 죽음을 기다릴 수 있을 듯싶다. 축제(祝祭)처럼.  

 

필자 박길수는 이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인물이다. 41년 결혼생활 중 4년여 전 느닷없는 아내의 뇌출혈로 불행이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의식없는 아내를 편안한 집에서 보살피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을 땄다. 치료비와 생활비, 그리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장애인 도우미 자격증도 따서 출퇴근한다. 항상 아내 곁을 지키는 아버지를 위해 딸과 사위, 그리고 누구보다 예쁜 손녀가 합류했다. 그는 불행한 생활일 듯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구원도 받는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 박길수의 일기’(https://m.blog.naver.com/gsp0513)에서 그러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기사입력 : 2019-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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