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의 그늘…한국행 보장조건으로 외국여성 ‘상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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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홍 대기자 2019-11-12

남녀 모두 피해자 양산하는 왜곡된 국제결혼

·베트남서 버려진 투명인간아이들        

 

한국의 결혼이주민 26만명은 애매한 존재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농·어촌을 떠받치는 등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한쪽에선 이들을 진정성 없는 혼인자로 매도한다. 차별적인 시선과 배우자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일부는 본국으로 떠났다. 2000년 이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38만명의 여성 중 9만명이 법적으로 이혼했다. 서류상 정리조차 하지 못하고 쫓기듯 떠난 이들을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베트남에선 2000년부터 2018년까지 98752명이 한국으로 결혼이주를 선택했다.   

 

다문화가정 출생아 비중 역대 최고베트남 출신 산모 최다

2018년에 5.5%결혼 238004년 만에 최대출생아 수는 줄어   

 

2018년 다문화 혼인 건수가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류(韓流) 열풍과 함께 베트남과 태국 국적 결혼이주여성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전체 출생아에서 다문화 자녀가 차지하는 비중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11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를 보면 2018년 다문화 혼인 건수는 2380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보다 8.5% 증가한 수치로, 2014(24400) 이후 최대다.

 

전체 혼인 건수는 줄어드는 가운데 다문화 혼인 건수는 증가세를 이어가면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다문화 혼인 비중은 전년보다 0.9%포인트 늘어난 9.2%를 기록했다. 2011(9.3%) 이후 7년 만에 최대치이며, 증가 폭은 2008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컸다.

 

2018년 다문화 결혼이 늘어난 배경으로는 한류 열풍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BTS를 비롯한 한류 확산과 박항서 감독 열풍 등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베트남과 태국 출신 아내 비중이 최근 23년 새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아내를 국적별로 보면 베트남 출신 비중이 201627.9%에서 201830.0%로 뛰었다. 태국 국적은 같은 기간 3.3%에서 6.6%로 두 배 증가했다.

 

다문화 혼인이 증가세를 보이면서 다문화 가정 자녀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2018년 다문화 출생아 수는 1년 전보다 361(2.0%) 감소한 18100명이었다. 출생아 수는 2012(22900) 정점을 찍은 뒤 6년 연속 줄어들었다. 다문화 출생아 수는 줄어들었지만, 전체 출생에서 다문화 출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5.5%로 가장 컸다. 전반적인 저출산 현상이 다문화 가정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문화 이혼 건수는 1200건으로 1년 전보다 53(0.5%) 감소했다. 이혼 건수는 2008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가장 적었고, 전체 이혼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9.4%에 그쳤다. 평균 이혼 연령은 남성은 49.4, 여성은 39.3세로 연령 차가 평균 10.1세다. 이혼 당시 미성년자 자녀를 두고 있는 부부의 비중은 36.1%였다

 

맞선부터 신혼여행까지 45남녀 모두 피해자 만드는 국제결혼 

 

국내 혼인 시장에서 소외된 한국 남성과 빈곤에서 탈출하고 싶은 개발도상국 여성. 그리고 혼인 문제를 수요·공급의 원리로만 보고 풀려고 했던 정부. 비뚤어진 중개 국제결혼의 이면에는 이런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미투(me too)’ 운동 등으로 국내 인권 감수성이 크게 높아졌지만 중개 국제결혼의 왜곡된 관행은 그대로다. ‘매매혼’, ‘상향혼이라고 낙인찍힌 상황에서 참여 여성과 남성 모두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여성과 남성 입장에서 각각 국제결혼을 택할 때 겪게 되는 문제들을 살펴봤다.

 

한국에서는 내가 (여자를) 고를 수나 있습니까? 여기(베트남)서는 고를 수 있잖아요.” 

베트남 맞선 장소에 가면 여자들이 50, 100명 많습니다. 남자들도 하루 10, 많으면 20. 원하는 분 만날 때까지 후보들이 계속.” 

 

2019년 국제결혼 중개 시장에서 자연스레 오가는 막말이다. 외국 여성 인터뷰, 국제결혼 원정기(遠程記), 국제결혼 팁 강의 등이 영상으로 만들어져 유튜브에 공개 게시물로 올라온다. 일부 영상에서는 여성에게 결혼 후 남편에게 어떻게 할 것이냐며 다짐과 포부를 묻고 모델처럼 워킹까지 시킨다. ‘얼굴이 하얗고 예쁘다’, ‘나이는 좀 많네라는 등 품평이 익명 댓글로 달린다. 한국의 결혼 중개업체에서 여성을 이렇게 대했다면 형사처벌까지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국제결혼 시장에서 여성들은 홈페이지에 상품처럼 진열돼 있었다.

 

외국 여성, 한국행 보장 조건으로 상품화’ 

 

국제결혼은 이를 택하는 한국 남성에겐 합리적 선택이다. 국내 혼인 시장에서는 직업·소득·집안 등을 기준으로 매겨진 등급에 따라 제한된 횟수로 소개팅이 이뤄진다. 국제결혼은 다르다. 여성에게 한국행을 보장해 준다는 암묵적인 대가로 남성은 나이 차가 제법 큰 여성을 제공받는다. 적지 않은 중개료를 내야 하지만 맞선부터 데이트, 신혼여행, 결혼식까지 해결해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깝지 않은 돈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국제결혼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결혼을 하지 못한 농촌 총각이나 도시 빈민에게 선택을 유도한다.

 

업계에 따르면 업자들은 통상 1000만원대의 중개료를 받는다. 개인 브로커를 통하면 더 싸질 수 있다. 이 돈에는 원정 여행비용이 포함된다. 원정 여행을 떠난 남성은 중개업자가 데려온 여러 명의 여성을 만나 본 뒤 마음에 드는 한 명을 골라 성혼 확인서를 작성한다. 일종의 결혼 계약서다. 파기하면 최소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계약이 체결되면 곧장 현지에서 신혼여행을 떠난다. 합방도 이 단계에서 이뤄진다. 한 이주여성단체 관계자는 마음에 드는 여성을 골라 호텔에서 합방한 뒤 서로 맞지 않는다며 여성을 교체한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모든 과정은 ‘45또는 ‘56에 걸쳐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후 여성은 현지에 남아 한국어능력시험을 치고 한국 문화를 배우며 비자 발급 작업을 마무리한다. 최근 여러 중개업자는 이런 과정을 전담하는 3개월, 6개월 코스의 신부 기숙사를 만들어 사업을 확장했다. 비용은 남성이 댄다.

 

철저히 남성 중심적으로 짜인 중개 방식이지만 남성 피해자도 나온다. 말이 통하지 않고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는 남녀가 한국에서 같이 살게 되기까지 모든 권한은 중개업자에게 있다. 피해 남성들의 모임인 국제결혼피해센터 안재성 대표는 상당수의 브로커는 예쁜 업소 여성 몇몇을 광고용 미끼로 쓴 후 막상 현장에는 다른 여성을 내보내거나 돈만 받고 중간 과정에서 파투가 나도록 미리 짜기도 한다고 증언했다. 남성을 현지로 불러 여성에게 돈을 쓰게 한 뒤 서류 작업 전에 결혼이 중단되도록 미리 계획한다는 얘기다. 금전적 이해관계 속에서 돌아가는 혼인 시장을 악용하는 여성들도 있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갖기 위해 위장결혼한 뒤 가출하거나 한국인 남편을 두고 베트남 남성과 외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부, 30년 전 국제결혼 유도이젠 손 놓아 

 

국제결혼이 왜 이런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까. 원인은 국내 혼인 시장의 붕괴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아선호사상으로 아들 낳기를 강조했던 사회에서 출생 성비(性比) 불균형은 필연이었다. 1990년에는 20~30대 여성 대비 남성이 116.5%로 심각한 비대칭을 보였다. 유리천장을 마주한 고학력 여성의 결혼·출산 포기는 비대칭을 심화시켰다. 당시 국제결혼 주선 업체들은 국제결혼 AS 됩니다라는 광고까지 내걸었다. 강동관 이민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성 상품화, 위장결혼 등 국내 결혼이주에서 생긴 문제는 한국 사회가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제결혼은 정부가 유도하며 판을 깔았지만 30여년이 지나면서 이젠 정부의 손을 떠났다. 2018년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의 국제결혼 건수는 16608건이다. 이제 중개 과정은 더 이상 사무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제결혼을 한 부부가 브로커가 되기도 하고, 페이스북·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연결방법도 열렸다. 임선영 국가인권위원회 이주인권팀장은 여성가족부에서 결혼 중개업 온라인 사이트를 심의하지만 요즘엔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일반 사이트가 아닌 싱글(미혼자) 카페, 돌싱(이혼자) 카페 등 친목 커뮤니티에 모집공고를 많이 올린다고 지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국제결혼 업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25개를 모니터링한 결과 지난 1~74515개의 영상이 게시됐다. 왕지연 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은 국가 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폭력·차별 못 견뎌 이혼하는 데 11코리안웨딩끝은 다시 가난  

 

1980년대 후반 한국 정부가 농촌의 인구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결혼을 장려하기 시작한 이후 베트남은 가장 적극적인 상대국이었다. 결혼을 통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인구는 2000년 이후 모두 10만여명. 껀터, 하이퐁 등 주로 가난한 농촌 및 도시 외곽의 어린 여성들이 왔다. 이후 30여년 간 많은 이주여성이 코리안드림을 이뤘지만 적지 않은 여성에겐 악몽으로 끝났다. 남편과 시댁의 홀대와 차별, 학대 등을 견디다 못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빈곤과 사회적 낙인이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되풀이되는 이주여성 수난사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음은 서울신문이 결혼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결혼 전후 겪은 속 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베트남에서 이주혼이 가장 활발한 메콩델타 지역을 찾아 결혼 피해 여성 4명과 가족을 한국인과 결혼시킨 당사자 13명을 심층 인터뷰한 것이다.

 

가난이 싫어 택한 황금빛 코리안 웨딩’ 

 

 

베트남 남부 껀터시의 화디엔 마을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은 기자가 국제결혼 여부를 묻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동네에서 국제결혼은 흔한 일이다. 도심에서 차로 달려 50여분 떨어진 곳, 흙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 마을이었다. 결혼이주민 자녀가 있는 가족을 수소문하니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딸을 타국에 시집보냈다고 했다. 껀터 인구는 이 나라 전체의 2.5%(112만명)에 불과하지만, 베트남 결혼이민자 가운데 6분의1이 껀터 출신이다.

 

이곳에 국제결혼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이다. 브로커들이 알음알음 들어와 한국이 잘사는 나라라며 풍요로운 삶을 미끼로 홍보했다. 최근에는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한류 (韓流)열풍이 코리안드림을 부추긴다. 껀터 안빙 시장에서 만난 응웬쭝응히아(60)“10년 전 국제결혼을 해서 떠났던 동네 사람이 한국에서 돌아와 2층짜리 집을 짓는 걸 보고 환상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후 응히아의 가까운 친척 중 5명이 한국, 대만 등으로 떠났다. 그는 조카 한 명이 한국에 잘 정착해 최근에 자기 엄마를 한국으로 모셔 갔다며 흐뭇해했다

▲ 베트남 안에서도 한국으로의 이주결혼이 가장 활발한 껀터시의 화디엔 마을

 

이 마을에는 이따금 결혼 중개업자가 찾아와 영업을 한다. 이들의 설명을 듣고 국제결혼을 결심하면 혼인 계약은 초고속으로 성사된다. 2018년 유엔인권정책센터 껀터사무소에서 결혼이민예정 현지사전교육 참가자 16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입국 전 남편을 만난 횟수는 70%1~2, 21%3~4회라고 답했다. 배우자와의 평균 연령 차는 19.5세로 여성 23.5, 남성 43세였다.

 

이곳 사람들에게 중개 국제결혼은 꼭 딸을 팔아 돈 버는 행위는 아니다. 국제결혼 때 남성 측이 여성의 가족에게 100~300만원을 건네기도 하지만 현지인들끼리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 쪽에 주는 결혼지참금과 비교해 그리 많은 돈은 아니다. 한 주민은 브로커들이 영업할 때 가족에게 돈을 약속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받는 일은 별로 없다면서 가족들도 결혼이 성사되면 굳이 더 요구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여성은 가난한 친정이 마음에 걸려 남편에게 용돈을 부탁해 송금하기도 한다

 

부모들이 바라는 건 돈이 아니라 딸의 더 나은 삶이다. 호티란(48)일자리가 없는 껀터에서 가난을 물려받아 사는 것보다는 훨씬 잘살고 세련된 나라로 자식을 보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세 딸을 모두 국제결혼시킨 팜티프언투(61)2년 전 막내딸을 한국으로 시집보냈다. 딸은 25, 사위는 40세였다. “종종 들려오는 나쁜 뉴스가 있지만, 딸은 한국에 잘 정착해 종종 화상통화를 걸어온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딸을 한국으로 보냈던 동네의 한 부부는 얼마 전 한국으로 떠났다. 딸이 한국에서 자리를 잘 잡아 부모를 아예 모시기로 했단다. 그는 그런 것까진 바라지 않고, 그저 딸이 좋은 데서 잘살았으면 한다며 웃었다.  

 

결혼이주자를 보는 복잡한 속내 

 

주민들은 한국으로의 이주 결혼을 좋게 말했지만, 사실 그 속내는 복잡했다. 화려한 삶을 보장하는 듯한 이주 결혼이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착잡한 일도 벌어진다. 언니가 국제결혼을 했다는 응웬티란프엉(33)사랑 없이 외국에 가서 결혼하는 여자들이 너무 불쌍하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는 결국 가난과 일자리 부족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언니는 외로움에 떨다 우울증까지 얻었다.

 

껀터 수상시장에서 만난 당반푹(46)이곳에서 결혼해 외국으로 떠나는 많은 여성의 동기는 가난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 출발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가서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일 것이라며 이런 결혼 방식이 근본적으로는 잘못됐지만, 처한 환경을 고려하면 (그런 선택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했던 베트남 이주여성 가정폭력 사건은 베트남에서도 공분(公憤)을 불러일으켰다. 발전한 도시인 다낭에서 만난 응웬쭝히은(40)자기가 마음에 든다고 데려가 놓고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폭행 사건이 반복될수록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많은 여성을 한국에 보낸 껀터 지역의 분위기는 좀 달랐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안 좋은 뉴스가 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푹은 폭행 영상을 봤지만 잘잘못을 속단할 수 없다면서 남자가 나쁜 사람이라면 불운한 경우이고 어쩌면 여성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주변 사람들은 한국에서 모두 잘 산다고 덧붙였다

 

쯔엉티투튀(50)솔직히 자기 자식이 잘사는지 못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무시당하고 망가진 가정에서 살고 있더라도 고향의 부모에게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자식은 드물다자존심 때문에라도 숨길 것이라고 했다. 유엔인권정책센터가 실시한 귀환여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돌아온 여성의 약 22%가정폭력으로 결혼 생활이 끝났다고 답했다

 

파경 뒤 쉽지 않은 귀환, 남은 삶도 파국 

 

끝내 한국 생활을 정리한 베트남 여성들에게는 이후에도 고된 삶이 기다린다. 2018년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이혼 건수는 1570(한국 가정법원 통계)이었다. 지난 10년간 16840쌍이 이혼했다. 파경을 맞고도 서류상 이혼을 하지 못한 이주여성도 많다. 국제결혼 때 양국에 혼인신고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혼 건수 통계도 양국이 같아야 한다. 그러나 서울신문이 결혼 이주가 가장 많은 껀터 지역의 법원으로부터 입수한 국제결혼 이혼 건수201건에 불과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의 국민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경우를 모두 합친 숫자인데도 한국 법원의 통계보다 훨씬 적다. 그만큼 서류상으로는 아직 이혼하지 못한 여성이 많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법원 관계자는 과거에 비하면 최근 이혼율이 매우 늘어난 것이라고 전했다.

 

귀환여성 응웬티지엠(38·가명)17살 차이가 나는 남성과 결혼했다가 2005년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그는 서류상 남편과 이혼하는 데 11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남편과 등진 상태에서 이혼 방법을 알려 줄 사람도, 한국에서 서류를 떼다 줄 사람도 없었다. 처리할 방도를 몰라 정리하지 못한 채 살다가 2016년에야 유엔인권정책센터 껀터사무소의 도움으로 이혼 절차를 밟았다.

 

중개결혼의 피해자 보띠링(31·가명)은 이혼까지 4년이 걸렸다. 링은 “2013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한 번도 한국에 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결혼 비자를 준비하던 중 베트남 주재 한국영사관으로부터 남편의 소득이 기준에 못 미쳐 비자를 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갈 수도 없는 한국에서 이미 링은 서류상 결혼한 여자였다. ‘법적 남편과의 연락도 끊겼다. 2016년부터는 비자 취득을 포기하고 이혼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일방 이혼은 허가되지 않았다. 남편의 정확한 주소, 바뀐 연락처도 없는 상태에서 이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엔인권정책센터 조사 결과 혼인관계가 깨진 귀환여성 가운데 3분의1(30.1%)은 여전히 법적 혼인 상태였다. 28%만이 양국에서 법적 이혼을 끝냈고, 24.7%는 한국에서만 이혼했다. 껀터법원 당판흥 최고재판관은 귀환여성들은 남편과의 연락 두절, 서류 미흡 등으로 이혼 절차에 어려움을 겪는 등 이곳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밝혔다. 급기야 껀터법원은 이혼을 원하는 여성이 베트남 국영 국제방송에 이혼 의사를 밝히는 자막 광고를 낸 후 3개월 내 연락이 없으면 남편 없이 이혼 궐석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광고비용은 법원이 부담한다

 

이주결혼 경험자들은 괴로운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면 다시 빈곤에 내던져진다. 귀환여성 가운데 고향에 그대로 거주하는 인원은 절반에 불과했다. 36%는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 내 타지로 이동했고, 11%는 외국으로 다시 이주 노동을 떠났다. 귀환여성의 44.1%는 수입이 10만원 미만, 32.8%10~20만원 수준이었다. 20~35만원 미만은 15.4%였다

 

가난 벗겠다고 한국에 시집간 내 딸병든 몸, 두 아이, 1억동 빚만 남았다

 

엄마, 나 한국 남자랑 결혼해.” 

 

15년 전 뜨띠흐엉(54·가명) 가족의 비극은 시작됐다. 며칠 이모 집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떠났던 딸이 다짜고짜 결혼식을 하겠다고 전화했다. 국제결혼 브로커가 모은 10명의 여자 가운데 선택받았다고 했다. 매매혼임을 모르지 않았다. 가지 말라고, 굶어도 여기서 같이 살자고 붙잡았다. 딸이 되물었다. “엄마, 우리 집에 결혼계약 위약금 낼 돈 있어?” 

 

딸은 어릴 적부터 눈치가 빨랐다. 중학교를 마친 뒤 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재학 내내 가난에 찌든 가족에 대한 괄시와 놀림에 시달렸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어린 딸이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했었다. “우리 집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한국 남자랑 결혼해야 할까 봐.” 브로커들이 마을을 다니며 한국으로 시집가면 행복하게 잘산다는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기왕에 한 결혼,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22살 된 딸을 데려가는 사위는 40대였지만 아내를 사랑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바람대로 되지 못했다. 사위의 사업은 결혼 직후 망했다. 그즈음부터 폭력이 시작됐다. 맞다가 집 계단으로 굴러떨어지기가 수차례. 경찰에 신고하자니 집 에서 우는 젖먹이 아기가 마음에 걸렸다. 집안일만 하는 딸의 몸에 든 피멍을 주변에선 알 길이 없었다. 유엔인권정책센터에 따르면 베트남으로 돌아온 귀환여성의 22%는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사위는 다 쓰러져 가는 장모의 집을 새로 짓는 데 1억동(500만원)을 보태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우선 대출을 받아 처음으로 철판을 댄 집을 지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무리한 대출금은 가족의 몫이 됐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다 갚지 못했다. 껀터 지역의 2019년 월 최저임금은 371만동(19만원)이다

 

고향으로 도망 오던 때 딸의 뱃속엔 둘째 아이가 있었다. 결혼 4년 만에 돌아온 딸은 고향에 얼마 머물지도 못하고 떠나 지금까지 타지를 떠돌고 있다. 최근에는 고향으로부터 200떨어진 가죽공장에서 막 벗겨 낸 가죽을 소독하는 일을 하다 수차례 병이 났다. 이처럼 한국에서 돌아온 여성의 절반은 다시 어딘가로 떠난다. 동네에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 데다 가정 파탄의 주범인 양 보는 차가운 시선 때문이다. 베트남 귀환여성의 30%는 이혼 절차마저 마치지 못했다. 베트남 껀터·허우장에만 최소 300명 이상의 귀환여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딸이 낳은 두 아이는 흐엉에게 맡겨졌다. 첫째 손녀 이름은 김이은(가명), 둘째 손자 이름은 응웬쭝(가명). 같은 엄마·아빠를 뒀지만 태어난 나라에 따라 각각 한국인과 베트남인으로 국적이 다르다. 농사꾼인 흐엉의 아들은 자기 가족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살림으로 부모를 부양하면서 여동생의 두 자녀까지 거뒀다. 이따금 고단함이 폭발해 너희 엄마랑 한국에 돌아가라며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이미 두 아이에겐 익숙하다. 아직 어린 이 아이들이 눈치만 늘었다

 

중개 국제결혼의 또다른 희생양한국·베트남서 버려진 투명인간아이들

 

고국 잃은 아이들.’ 베트남 현지 언론 뚜오이쩨5년 전 베트남에서 무등록 외국인 신분으로 사는 국제결혼 자녀들의 실태를 다루며 이런 표현을 썼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베 아동)이었다. 남편과 시댁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베트남 여성들은 자녀를 데리고 쫓기듯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이를 증명할 서류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실거주지인 베트남에서조차 이들은 무등록 외국인으로 숨죽인 채 살고 있다. 어느 국가에서도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아이들은 어른의 필요로 만들어진 중개 국제결혼의 희생양이다.

 

뚜오이쩨20148월 허우장시에 사는 홍대준(13)군의 사연을 소개했다. 베트남 국적이 없어 8(베트남 취학 연령은 6)이 될 때까지 학교에 가지 못한 채 방치됐다는 이야기였다. 엄마 뜨티무어이(32)는 한국인 남성과의 결혼 생활 중 아픈 친정아버지를 잠깐 보기 위해 베트남에 들어왔다가 강제로 귀환여성이 돼 버렸다. 귀국편 비행기표를 보내 주기로 한 남편과 시댁이 모두 연락 두절됐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학교에 다니려면 현지에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아버지의 동의서와 기본적인 증명서들이 필요하지만 갑작스레 버려진 모자에게 그런 서류는 없었다. 아이 양육비를 벌어야 하는 엄마는 도심에 나가 일자리를 구했고 대준군은 홀로 외가에 맡겨졌다.

 

그로부터 꼬박 5년이 지난 20198월 서울신문 기자는 대준군을 찾아갔다. 허우장시 외곽 마을에서 만난 대준군에게는 그동안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언론 보도 이후 껀터·허우장 지역에서는 지방정부 지침을 통해 학교장 재량으로 한국 국적의 무등록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했다. 학교에서는 알아주는 모범생이다. 3학기 연속으로 성적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가장 잘하는 과목이 무엇이냐고 묻자 국어(베트남어)를 제일 잘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준군과 어머니는 여전히 살얼음판 위를 걷듯 불안하다. 엄마 무어이는 학교에 정식으로 다니는 것은 아니라서 졸업장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지 학교에서는 한·베 아동들이 공식 문서 없이 입학하면 일반 학생기록부를 작성하지 않고 별도로 관리한다. 또 대준군은 법적으로 베트남에 살 근거도 없다. 비자도 진작 만료됐다. 불법체류 상태로 사는 셈이다. 그의 존재를 증명할 유일한 서류는 2015115일자로 만료돼 버린 한국 여권이 유일하다.  

▲ 5년 전인 2014년 8월 8살이 되도록 학교에도 가지 못한 대준군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한 베트남 일간지 뚜오이쩨의 기사.

 

그럼에도 대준군은 현지 한·베 아이들 가운데 운이 좋은 편이다. 베트남에 살고 있는 무등록 한·베 아동의 수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껀터시에서 2014년 가정방문 조사를 통해 집계한 160여명이 유일한 힌트. 현지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은 당시 집계 목록에서 NGO가 파악하고 있던 아이들의 상당수가 빠지는 등 통계가 완전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껀터 지역의 한·베 아이들만 해도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규모조차 알 수 없는 이 아이들은 기초적 복지와 의료권에서 소외돼 있다. 유엔인권정책센터 껀터사무소가 지난해 베트남 거주 귀환여성과 한·베 아동 301가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아동의 55.8%가 미등록 체류 상태였다. 귀환여성 가운데 42.7%가 자녀를 뒀고 이 중 87.4%가 자녀와 함께 귀환했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한·베 가족 해체 자녀는 최소 3858명이다. 전체 국제결혼 이혼 부부 자녀의 수는 최소 12281명으로 조사됐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기사입력 :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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