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선의 ‘생활의 발견’●전설의 고려방

크게작게

박현선 2020-07-31

우리가 만들고, 쓰고 있는 것들이 역사의 골동품으로 

 

~ 돌 거북이네!”

목을 잔뜩 움츠리고, 상념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등 한가운데 자가 깊게 새겨져 있다. 천 년의 뚝심을 지닌 커다란 거북이가 고려방 지킴이로 엎드려 있다. 종로3가 전철역에서 문화 의 거리로 쭉 뻗은 도로 주변에는 장고나 가야금을 파는 악기점. 쇼윈도에는 선녀의 나래옷처럼 곱디고운 한복을 판매하는 고전 의상실이 즐비하다. 건물 사이로 금빛으로 웅장하게 치장 된 대각사도 보인다. 인사동 한복판에 있는 고려방은 고미술 갤러리로 지난 과거의 대변인 역할을 하듯 미술품과 골동품이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해 전시되어 있다. 입구에서 김 관장이 우리를 반겨준다

 

전시장에는 화강석으로 조각된 석조 불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 옛날 곳곳에 석질이 매우 좋은 화강석이 많아서 건축이나 조각의 재료로 쓰이는 화강석이 발달했다고 한다. 강인한 화강석에 부드러움을 원하면 부드럽게, 섬세한 곡선을 원하면 섬세한 곡선으로 마치 화강석을 맘대로 주무르듯 다룰 수 있었던 과거 조각가들. 전통적인 솜씨가 그대로 드러난 기교미가 있는 작 품이라 한달음에 달려가 사들였다고 한다. 옛 조상들은 남자의 마음을 돌 같은 심지로 표현했다. , 오랜 풍파의 세월을 보낸 돌의 마음을 이해해야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단다. 관장은 돌에서 인내를 배우고 돌과 아침, 저녁으로 소리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생활용품 골동품들은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어설퍼 보이기도 하지만, 옛 농민의 한숨과 웃음이 뒤섞여 보이는 절구, 곱돌솥, 소반의 여러 종류가 진열되어 있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화로가 눈에 들어와 반가운 마음에 만져보았다, 꺼칠한 감촉은 할머니가 귀엽다고 볼을 만져주었던 따뜻한 체온이 손끝에 느껴지는 기분이다. 어둑해지면 할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밥을 지으며 구들을 따뜻하게 만드셨다. 아궁이 숯을 화로에 가득 담아 고구마를 묻어 군것질거리를 만들어주셨다.

 

노릇노릇 구워진 고구마를 손녀 입에 넣어줄 때, 화로에 비친 할머니 얼굴은 검붉은 목단꽃으로 물들어 있었지.

 

나무로 깎아 색을 입힌 오리 한 마리가 오도카니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동무를 기다리는 익살스러운 아이의 모습 같기도 하다. 옆으로 용이 굼틀거리며 노니는 그림이 그려진 분청사기 매병이 진열되어 있다. 용 그림 위에 연꽃잎을 그려넣은 것을 보니, 용이 승천하기 전 기뻐서 넘실대는 웃음으로 보였다. 나란히 호리병 모양의 백자 양각매죽 문병이 놓여있었다. 희디흰 모습의 도자기는 우리네 성품과 잘 어울릴법한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었다. 가냘픈 것 같으면서도 부드러워 보이는 미끈한 곡선에 은은한 광택은 기품 있는 곡선이 되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시선을 끄는 물건이 있어 자세히 보니,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 판매되었던 우리나라 최초 화장품 박가분장분(朴家紛張粉)이 전시되어 있었다. 흰색 골패 모양 16개가 청색 꽃으로 디자인한 사각 통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누렇게 변한 사용 설명서에는 머리를 곱게 빗어 길게 땋아 내리고, 치마저고리를 입은 처녀가 경대 앞에 앉아 화장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화장품의 최초 역사를 대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며 신비롭기조차 했다.

 

뒤로 그 옛날 꽃 자수 병풍이 있다. 만든이는 소망을 비는 것처럼 절실한 마음의 표현으로 비단 실을 바늘에 꿰어 한 땀씩 수놓았을 것이다. 작품 중에 꽃방석이나 자수 병풍은 요즘으로 말하면 집안을 꾸미는 인테리어 소품이다. 예전 나의 어머니도 횃댓보에 수를 놓아 옷 가리개를 만들어 옷을 보호하였다. 수 틀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셨고, 담담한 집안의 분위기를 생기 있게 수놓았다. 고운 색채가 알맞게 깃들어져 있었고, 그 밑에는 자식들의 영롱한 꿈을 기원했을 것이다.

 

인사동에 오는 많은 외국인이 생활용품 골동품인 반닫이, 삼층장, 병풍을 사가고 있다고 한다. 듬직한 조상의 전통 가구들 이 외국인의 집안 장식을 위해 이민을 떠나듯 그렇게 수만 리 길을 떠나가고 있다.

 

골동품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사의 끈이다. 기계 문명의 극지점에 살고 있는 지금에 우리는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 우리가 만들고, 쓰고 있는 것들이 역사의 골동품으로 남겨지게 되면 좋겠다. 박현선(수필가

 

 

기사입력 : 2020-07-31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뒤로가기 홈으로

가장 많이 읽은 기사

URL 복사
x

PC버전

Copyright ⓒ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