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좌산 상사 “정신세계 관심없고 온통 물욕…종교인도 책임 있다”

크게작게

문윤홍 대기자 2020-11-20

사는 게 힘들다고? 긍정 찾아 희망 열어야정신가치와 물질가치의 균형 새롭게 해야  

 

"마음을 잃고 뺏기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다른 것은 잃고 뺏겼다 해도 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음과 정신세계에다 관심을 안 갖고 온통 돈과 숫자에만 매달리는 게 큰 병이다."

 

좌산(左山) 이광정(李廣淨·84) 상사(上師·원불교 종법사를 지낸 뒤 은퇴해서 생존한 큰 스승)는 꼼꼼하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어른이다. 지금도 평생해온 대로 새벽 430분에 일어나고, 강연과 법문 등으로 바쁜 틈틈이 직접 뜰안 소나무의 가지를 치고 곶감을 꿰어 말린다. ()과 수행에 대한 안목도 무척 높다. 수행과 실천이 하나 되는 그의 일상은 여전히 원불교 교도들의 모범이다.

 

좌산 상사는 201912월 라오스로 의료봉사를 떠났다가 현지에서 쓰러졌다. 긴급 이송해 한국에서 심장 박동장치를 다는 심장 수술을 했고, 지난 1월에는 구강암 수술까지 했다. 수술 후 불과 며칠 만에 그는 병원 복도에서 하루 2만보씩 걸었다. 담당 의사는 이렇게 빨리 아무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깜짝 놀랐다. 그것도 80대 중반의 환자가 말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근황이 놀랍다,

▲ 좌산 이광정 상사는 "밥을 먹는 것은 순리이고, 독약을 먹는 것은 역리이다. 그런데 이치를 모르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독약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좌산 상사는 원불교 최고 지도자인 종법사(宗法師)12년 재임하고 200610월 은퇴한 뒤 전북 익산시 미륵산 자락의 상사원(上師院)에서 주석하고 있다. 좌산 상사는 '마음 닦음''마음 씀'에 관한 원불교 가르침의 정수를 담은 책 마음수업()를 펴낸데 이어 나라가 하나 되길바라는 마음으로 국가 경영 지혜(원불교출판사)도 출간했다.

 

한평생 종교 지도자로 살아온 좌산 상사가 원불교의 교법을 책 국가 경영 지혜의 중심에 두고, 그동안 수행으로 갈고 닦은 풍부한 지혜를 바탕으로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낙원 세상으로 이끌기 위해 오래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좌산 상사는 국가 경영 지혜를 통해 지난날 정치 주역들이 국가를 경영하는 지혜 부족으로 우리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숱한 잘못을 다시 살피고, 지난날을 거울삼아 바르고 합당한 길로 나아갈 지혜를 이 책을 통해 얻기를 당부하고 있다.

 

현대는 불안과 두려움과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과,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는 온갖 사건·사고로 점철돼 있다. 유행처럼 번지는 심리학 서적과 멘토 열풍, 한편에서는 타로와 사주 카페 등 제각기 자신의 비상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단기적 처방은 단기적 완화만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해야 한다.

 

마음수업은 오늘날 공교육 현장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으로 각광받고 있는 원불교 마음공부의 핵심원리와 구체적 실천법을 밝힌 책이다. 좌산 상사가 그의 인생 3대 서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고 있는 '현대인의 마음치유'를 위한 바이블이라 할 수 있다. 마음공부는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경계를 공부의 기회로 삼고 일상과 수행을 병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나되면 강해지고 나눠지면 약해져보수와 진보도 서로 도움 돼야

 

우리 사회가 통합보다는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심하다. 이러한 때에 이를 중재할 수 있는 사회의 어른이 필요하다. 종교 지도자가 국가 경영을 제목에 붙인 책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좌산 상사는 "정산(鼎山·1900~1962) 종사님이 '무엇이든 하나 되면 강해지고 나눠지면 약해진다'고 하셨다. 정치 지도자들이 대의(大義)에 하나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라고 밝혔다. 1994~2006년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종법사를 역임한 좌산 상사는 "원불교 스승님들의 좋은 가르침이 많은데 우리(원불교)끼리만 알면 무엇 하나, 나라가 잘돼야지 싶은 책임감에 책으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국가 경영 지혜는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등 전 분야에 걸쳐 156개 주제를 경전 구절이나 경구(警句)처럼 짧은 글로 정리했다.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1891~1943) 대종사를 비롯한 원불교 스승들의 어록과 고전, 그리고 신문과 방송을 빠짐없이 보며 정리했다. '권력은 무한 복()을 지을 수도, 무한 죄()를 지을 수도 있다' '보수가 없으면 아름다운 전통을 틀스럽게 지켜갈 수 없고, 진보가 없으면 발전 지향의 새 영역을 일궈갈 수 없다' '전후임 간에 도()가 있으면 서로서로 도움이 되고 은혜가 되어 국가 사회 발전으로 이어지나, 전후임 간에 도가 없으면 공직자가 공직자를 괴롭히는 것이 되고 국가 사회에 큰 피해로 작용한다'와 같은 짧은 문장들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연쇄 대아(大我)주의'라고 했다. 좌산 상사는 "사람들은 흔히 '옳다' '그르다'는 기준을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 ()가 되는가로 판단한다. 이건 소아(小我)주의이다. 이런 사리사욕이 끼어들면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이 설 땅이 없어진다. 나를 버리고 대의를 추구하는 대아주의가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좌산 상사는 “나라가 하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국가 경영 지혜』 책을 냈다”고 말했다.

  

지도자의 자격으로는 언행일치, 은현(隱現)일치, 내외(內外)일치, 지행(知行)일치를 꼽았다. 그는 "적어도 언행일치는 이루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해야 한다""그럴 때 선거는 '지자(智者) 탄생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인 국가 경영에서는 이상(理想)만큼 현실감각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좌산 상사는 "지금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으로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방향과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현실감이 부족하면 안 된다. 목표는 멀리 두더라도 발 디딜 곳을 정확히 봐야 넘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좌산 상사는 책을 청와대와 여야 정치인들에게도 보냈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얼마나 이 책을 읽고 실천해 나라를 하나 되고 강하게 만들지 관심사다.

 

강자와 약자가 서로 어울려서 보살피고 도와주는 것이 공동체 정신

마음수행은 세계를 실제로 변화시키는 힘 있어내 혼이 맑아져 있으면 가는 곳마다 밝혀져  

 

일반 국민의 삶은 팍팍하고 사회와 국가적으로도 혼란스럽다. 어디에다 마음을 잃고 뺏긴 걸까. 좌산 상사는 "개인도 국가 정책도 온통 물화(物貨)가치에만 마음을 빼앗겼다. 마음을 안 돌봐서 피폐해지면 물질문명은 인간을 괴롭히는 도구일 뿐이다. 정신가치와 물질가치의 균형을 새롭게 해야 한다. GNP 같은 계량치가 오르내리는 데는 난리가 나면서 가족 붕괴를 가리키는 이혼율, 사회 붕괴를 가리키는 범죄율 같은 것은 심각하게 생각지 않으니 큰일이다. 종교인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그는 "()의 독점이 지나치면 궁극적으로 독한(毒恨·독이 서린 한)이 뒤따르게 된다. 거대 기업이 세계를 주름 잡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대기업과 부자, 중소기업과 근로자가 균형적 판도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 작은 톱니바퀴가 못 돌아가면 큰 바퀴도 못 돌아가는 게 이치이다. 큰 바퀴일수록 더 크게 피해를 입는 것이고, 선의의 경쟁은 있어야 하지만 경쟁에서 낙오된 절대 약자는 강자들의 배려로 살려내야 한다. 강자와 약자가 서로 어울려서 보살피고 살갑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공동체 정신"이라고 말했다.  

▲ 좌산 이광정 상사는 “세상엔 늘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며 “마음밭을 가꿔 오곡백과가 열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가족 관계도 예전과 같지 않다. 좌산 상사는 가정이 망하려면 먼저 그 가족들의 마음이 붕괴되고, 나라가 망하려면 먼저 국민과 지도자들의 마음이 붕괴된다. 구성원의 마음이 붕괴되면 그 어떤 집단도 버틸 수 없다. 지리산 마을 한 초등학교에 갔더니 아이들 절반이 결손 가정에 산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가정이 막 무너지고 있다, 돌파구를 찾을 사회운동의 정형을 세워야 한다. 관심만 가지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근래에 학교 폭력이 심각하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저지른 섬뜩한 폭력에 세상이 놀란다. 이에 대해 좌산 상사는 "마음을 돌보지 않아 생긴 도덕적 피폐다. 이미 그 피해가 홍수처럼 내 집 문턱 앞에 와서 넘실거리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잘 길들이면 선해지고 잘못 길들이면 짐승보다도 못하게 나빠질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을 지혜롭고 법도 있게 잘 길들이는 게 교육인데, 못된 씨앗이 아닌 선한 씨앗이 싹을 틔워 성장하도록 토양을 잘 만들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 나 혼자 마음 닦는다고 세상이 바뀌게 될까. 좌산 상사는 "마음수행은 세계를 실제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정신세계의 파장이라는 게 아주 묘한 것이다. 내 혼이 맑아져 있으면 가는 곳마다 밝혀지는 것이다. 내 하나의 정신이 물결 파장 일으키듯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것, 그것이 아주 소중하다. 우리 교도들이 끊임없이 마음 훈련을 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라고 했다.

 

요즘 곳곳에서 사는 게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좌산 상사는 "옛날 얘기 하나 해주겠다. 옥황상제가 인간 세상에 시찰을 왔다. 어느 사람이 와서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안 입어도 따습고, 사시사철 꽃피는 그런 세상으로 좀 데려가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옥황상제가 '떼끼, 이 녀석아! 그런 세상 있으면 내가 먼저 가지 너 주랴!' 했다. 현실에는 항상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긍정적인 것을 찾아 확대시키고 그걸 통해 희망을 열어간다. 현실을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고, 안분(安分)을 찾아 그 마음을 간직하고, 내일을 보며 희망을 가져야 한다. 마음이란 방치하면 묵정밭(오래 돌보지 않아 거칠어진 밭)이 된다 온갖 독초와 잡초가 무성해 자타(自他)간에 큰 피해를 주게 된다. 가꾸면 황금밭이 되어 오곡백과의 은실(恩實)이 열려 자타 간에 큰 은혜와 행복이 된다. 성외무법(性外無法) 심외무불(心外無佛)이라, 품성 바깥에 법 없고, 마음 바깥에 부처가 없는 것"이라고 설했다  

 

코로나19는 인간의 오만을 강타역사는 딱딱하게 굳어있지 않아

역사 속에는 진보가 대처해야 할 때가 있고, 보수가 대처해야 할 때가 있다

 

중세 때 흑사병이 유럽을 휩쓴 뒤에 비로소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뭘까. 좌산 상사는 코로나는 합리적 지혜를 외면하는 인간의 오만을 강타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떠한 인간의 오만인가. 그는 중국에서 처음에 한 의사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를 했다. 중국 정부는 그걸 무시했다. 그리고 호되게 당했다. 거기에는 중국식 정치 제도의 오만이 있다. 코로나는 그러한 오만을 강타했다. 또 미국은 자유에 대한 오만 때문에 크게 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유에 대한 오만이라면 뭘 의미할까. 좌산 상사는 “‘코로나가 확산돼도 나는 괜찮다며 자유롭게 생각하는 식이다.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자유가 오만에 빠지면 남을 해코지한다. 미국은 그런 딜레마에 빠져 있다. 코로나는 바이러스 아닌가. 오만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로 대처해야 한다. 그게 이치에 합당한 것라고 말했다.

 

종교도 예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코로나 시국에 나의 신앙생활은 괜찮아라고 하는 것도 오만이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가 심한 홍역을 치렀다. 한국사회는 두 가지 병을 앓고 있다. 이른바 믿음 병이다. 하나는 무조건 믿는 맹신 병이고, 또 하나는 무조건 안 믿는 불신 병이다.”

 

맹신과 불신의 대표적인 곳이 정치권이다. 자기 진영에 대한 맹신과 상대 진영에 대한 불신. 한국사회 진보와 보수의 무조건적인 대립과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좌산 상사는 정치 현실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역사는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게 아니다. 살아서 움직이며 늘 변용한다. 그래서 보수적 시각을 갖고 있더라도 진보적 시각으로 대처해야 할 때가 있다. 반대로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더라도 보수적 시각으로 대처해야 할 때도 있다. 이걸 제대로 못하면 어찌 되겠나. 나라가 망한다. 역사 속에 그런 예는 많다고 설명했다

▲ 좌산 상사는 "자기 자신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으려면, 항상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주의로 나아가려고 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합리적 지혜가 애매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맹신과 불신을 거듭하면 나라가 망한다. 그 사례를 구한말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구한말에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주의자들이 우리도 문호를 열자고 했다. 흥선 대원군은 그걸 안 들었다. 오히려 그들을 잡아다 죽이려고만 했다. 결국 36년간 일제 식민통치를 당하지 않았나. 보수주의자라고 해도 진보적 시각을 택해야 할 때가 있다. 해방 후에는 어땠나. 국제 정세가 자유주의 대 공산주의 진영으로 갈라져 싸웠다. 그때 보수주의자가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공산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나마 반토막이라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진작에 공산화되지 않았겠나. 그걸 과연 피할 수 있었겠나라고 반문했다.

 

좌산 상사는 역사 속에는 진보가 대처해야 할 때가 있고, 보수가 대처해야 할 때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가만히 현실을 주시하고 있다가 진보적 시각이 두드러질 때는 이쪽 사람을 쓰고, 보수적 시각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는 또 저쪽 사람을 써야 한다. 그걸 잘해야 한다. 그럼 누가 좋아지겠나. 결국 국가가 좋아지고, 국민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자기 진영을 맹신하고, 상대 진영을 불신하면 어찌 되겠나. 다 같이 공멸하고 만다.” 이어 좌산 상사는 권력 뒤에는 반드시 부정부패가 따르게 마련이다고 말했다.

 

권력 뒤에는 왜 부정부패가 따를까. 그는 그동안 사회 부정부패를 어지간히도 봤다. 이만큼 세월을 살다 보니까 보이는 게 있다. 인간의 속성상 평소에는 잘하다가도 권력만 잡으면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왜 그렇겠나. 권력을 잡으면 이기주의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그걸 깨려면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게 쉽지는 않다. 원불교의 교리도 마지막 결론은 무아봉공이다. 나의 사리사욕을 다 없애고, ()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좌산 상사는 요건 좀 매운 질문이라며 일원상 게송(偈頌)’을 꺼냈다.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에 앞서 미리 내린 게송이었다. “()는 무()로 무는 유로/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좌산 상사는 유에 있어도 유에 집착하지 않고, 무에 있어도 무에 집착하지 않으면 대자유의 세계에 있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좌산 상사가 일러주는 신통과 합리

종교의 가르침은 신통묘술이나 기적이 아닌 합리적 지혜” 

 

소태산 대종사가 계실 때였다. 당시 집들은 대부분 초가였다. 대종사가 제자들에게 짚으로 지붕을 덮었으면 새끼줄로 묶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도 안 묶었다. 그랬더니 대종사가 갑자기 바람 불면 어쩌려고 안 묶었느냐?”고 물었다. 제자들은 여기는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습니다.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날 밤에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결국 지붕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이튿날 제자들은 대종사님 신통(神通)이 있으시다. 지난밤에 바람이 부는 걸 어떻게 아셨지?”라고 수군거렸다. 그것을 보고 대종사는 심하게 꾸짖었다. “나는 합리적이고 바른길을 일러주었지. 신통하는 길을 일러준 게 아니다.”

 

좌산 상사가 전하는 대종사 말씀은 종교의 가르침은 신통묘술이나 기적이 아니라 합리적 지혜이다. 종교인들이 코로나에 대처할 때 명심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종법사(宗法師)와 법통

 

원불교 교단의 최고 지도자, 또는 그에 대한 호칭으로, 가장 으뜸 되는 법사(스승)라는 뜻을 포함한다. 원불교 종법사는 교조인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의 법통을 이어, 안으로 교단을 주재하며 밖으로 교단을 대표한다. 또한 교단의 조직에 있어서 최상위 의결기관인 수위단회의 의장, 최상위 교화단인 수위단의 단장, 교화단의 총단장이 된다.

 

1927년에 간행된 불법연구회규약(佛法硏究會規約)의 제4장 임원 편에 종법사는 도리에 정통하고 범사에 모범이 될 만하며 일반회원이 존위를 올릴 만한 인물로 총대회에서 선정하여 본회의 공부·사업 양 방면을 지도 감독함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교조 생존 시에는 자동적으로 추대되었으나 교조가 사망한 후 종법사 제도는 구체화되었다. 선출자격은 출가위(出家位) 이상을 원칙으로 하고, 그에 해당하는 인물이 없을 때에는 법강항마위(法强降魔位) 중에서 선출한다. 출가위는 원불교 교도들의 공부등급을 6단계로 나눈 가운데서 두번째로 높은 법위(法位)이다.

 

현재는 6년마다 선거하며 중임할 수 있다. 선거는 수위단원(首位團員)과 법사들로 구성된 선거인단에서 행하며, 중앙교의회에서 추대된다. 주요업무는 교화의 주재, 수위단회 의결을 거쳐 교서편정·상벌시행·영전·사면·복권·교규제정(敎規制定)을 하고, 기타 중요한 인사임면을 하며 교령(敎令)을 발한다. 천주교의 교황이나 불교 종정(宗正), 천도교의 교령 등에 해당하는 지위와 유사하다

 

1924(원기9)에 불법연구회 창립과 더불어 소태산은 총재로 추대되었으며, 동시에 제1대 종법사가 탄생했다. 교단 초창기에는 아직 교헌(敎憲교규(敎規) 등 법제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법사라는 호칭이나 선거, 임기 등이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소태산이 교단 창립주, 곧 교주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교단 법규는 소태산 당대에 초안을 준비했으나, 교헌이 공식적으로 제정되어 선포된 것은 소태산 열반 후인 1948(원기33)이다.

 

소태산의 열반으로 1943(원기28)에 후계 종법사로 정산종사가 선출되었으며, 19년 재위한 정산의 열반으로 1962(원기47) 대산종사가 종법사에 선출되었다. 대산은 생전에 종법사직을 사임하여 1994(원기79)까지 32년간 종법사에 재위했으나, 교헌교규에 의해 6년마다 선거를 통해 연임하게 되었다. 대산의 퇴임으로 좌산종사가 다음의 종법사에 피선되었으며, 이 때 신구 종법사가 퇴임과 취임을 겸한 대사식(戴謝式: 대사란 신임 종법사의 추대와 퇴임 종법사에 대한 사례의 의미)이 처음으로 행해졌다.

 

좌산은 2기 곧 1994년부터 2006년까지 12년간 재위했고, 다시 선거에 의해 경산종사가 선출되어 2006(원기91)부터 종법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종법사의 대수(代數)6년 단위로 산정한다. 다만 소태산 당대에는 선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에 제정한 교헌에 의해 소급해서 대수를 나누었다. 그러나 소태산과 정산의 열반으로 후계 종법사가 선출됨에 따라 6년 단위의 대수가 애매한 경우가 발생하여 이를 공식적으로 확정하는 논의를 거쳐 경산 종법사를 13대로 정했다. 이러한 과정과 논의 결과가 널리 홍보되지 아니하여 보통 소태산을 1, 정산을 2, 대산을 3, 좌산을 4, 경산을 5대로 부르기도 하며, 교조인 소태산을 종법사 대수에서 제외하는 경우도 있다.  

 

좌산 상사와 종법사들이 기억하는 이건희 회장

원불교, 추도식 거행전산 종법사 그 공덕 대한민국 역사와 더불어 빛날 것"

 

얼마 전 작고한 이건희 삼성회장은 원불교 교적에 등록된 교도였다. 고인이 원불교와 인연을 맺은 데도 삼성그룹 창립자인 부친 고() 이병철 회장의 천도재가 큰 계기가 됐다. 부인 홍라희 여사의 모친 고() 김윤남(신타원 김혜성 원정사) 여사가 워낙 신실한 원불교도였다. 장모와 부인의 권유로 고인은 원불교에 교적을 올렸다.  

 

19871213일 전북 익산 왕궁면의 중앙훈련원 소법당에서 열린 이병철 회장 천도재에서 이건희 회장은 원불교 대산 김대거(1914~98) 종법사로부터 중산(重山)’이라는 법호와 중덕(重德)’이란 법명을 받았다. 종법사는 원불교 최고지도자다. 원불교를 창교한 소태산 대종사에 이어 제2대 종법사를 역임한 정산 종사, 3대 종법사를 지낸 대산 종사는 원불교 교단에서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이병철 회장 천도재는 원불교단 간부와 총부 인근의 교도 100여 명이 참석해 유족과 함께 거행됐다. 당시 대산 종법사의 특별 천도 설법이 이건희 회장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고 한다.   

 

천도재에서 대산 종법사는 호암 이병철-오직 불심에 귀의하여 가소서라는 제목으로 설법을 했다. “선생이 이 나라 경제계에 공헌한 공덕에 대하여 평소 큰 박수를 보내 왔는데 갑자기 부음을 접하니 놀라움과 애도하는 마음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라고 운을 뗀 뒤 대산 종사는 선생이 끼친 빛나는 공덕은 영원한 세상에 선생의 무한한 복록이 될 것이며, 이제 오직 불심에 귀의하여 큰 서원 세우고 착()없이 가시는 일만 남았음을 명심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산 종법사는 영가의 과거 일생은 고락 영고를 막론하고 이미 다 마쳤사오니 과거의 세간 애착은 조금도 염두에 남기지 마시옵고 오직 생멸 거래가 없고 망상 번뇌가 끊어진 본래의 참주인을 찾아서 미래 세상에 반드시 불과를 얻고 대중을 이익 주며 금생에 모였던 모든 선연도 불토극락에 다시 만나서 한 가지 도업을 성취하옵기를 깊이 축원하오며 간절히 부탁하옵나이다라고 설법했다. 당시 대산 종사의 천도재 설법은 대산종사법문집에도 수록돼 있다. 이날 대산 종사는 이건희 회장에게 법랍과 원불교 전서 등을 선물했다. 아울러 12인연 법문과 법위등급을 해설하는 법문을 통해 이건희 회장에게 큰 인물이 돼 줄 것을 당부했다. 천도재 이후에 이 회장은 홍라희 여사나 김윤남 여사와 함께 대산 종사를 종종 찾아뵙곤 했다

▲ 고 이병철 삼성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이 1980년 삼성본관 집무실에서 함께 촬영하고 있다, /사진=삼성  

 

대산 종사에 이어 4대 종법사를 역임한 좌산 상사는 1025일 이건희 회장의 부고를 접하고 참 말수가 적은데, 얼마나 생각이 깊은 분인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좌산 상사는 이건희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러니까 48년 전이었다. 그때 저는 교단의 교화부장을 맡고 있었다. 서른여덟 살쯤 됐으니 저도 젊었다. 당시 대산 종사님이 익산 왕궁면 묘원에 계셨다. 가족과 함께 이건희 회장이 왔는데, 인상에 아주 무게감이 있었다. 그런 정중함이 있었다. 그게 아주 크게 와 닿았다.”

 

그때부터 좌산 상사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유심히 살폈다고 한다. “일단 사람을 신뢰하면, 그 사람에게 모든 걸 일임한다. 그리고 당신은 미래지향적이고 첨단지향적인 구상을 했다. 그러다가 몇달 지나면 세계 최초, 또 몇달 지나면 세계 제일을 내놓았다. 그걸 보면서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예전에는 우리가 소니 같은 일본 기업을 얼마나 부러워했나. 지금은 삼성이 세계를 앞서고 있지 않나. 그걸 해낸 사람이다.”

 

좌산 상사는 지금은 반기업적 정서가 많지 않나.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일본과 대립하면서 살았나. 그래도 일제, 일제하고 소니, 소니하면서 최고로 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한국 제품은 알아주지도 않았다. 그걸 삼성 이건희 회장이 나와서 바꾸어 놓았다. 원불교 교도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사실 하나만 하더라도 그 공로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우리 역사 속에 찌들어 있던 가난을 바꾸어 놓지 않았나. 그걸 어떻게 과소평가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할 때였다. 좌산 상사는 러시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러시아 개방 초기였다. 공항에 내렸는데 삼성 간판이 이미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더라. 그걸 보니까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자부심이 들더라. 고인은 그처럼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를 살려주는 역할을 했다.”  

 

고인의 법호는 중산(重山)’이다. 좌산 상사는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무거울 중, 뫼 산이다. 무거운 산이다. 고인의 진중함, 인격적 무게감도 있다. 그렇지만 저는 고인이 세상에 끼친 은혜의 무게가 그처럼 무겁다고도 본다. 삼성이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선두 주자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한편, 원불교는 지난 10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추도식을 거행하고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원불교는 118일 전북 익산 원불교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중산(重山) 이건희(법명 중덕) 대호법(大護法)의 추도식을 거행했다.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전산 종법사는 추도식 법문에서 "중산 이건희 대호법은 대한민국을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은 위대한 경세가로, 그 공덕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지친 심신을 청정한 법계에서 편안히 쉬었다가 인연 따라 다시 오시어 복혜(福慧) 구족한 불보살로 제생의세(濟生醫世·생명을 도탄에서 건지고 병든 세상을 치유)의 큰일을 성취하기를 심축한다"고 덧붙였다.

 

()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중산(重山)이라는 법호를 받고, 1991년 대호법을 서훈했다. 대호법은 원불교 재가교도 가운데 공부와 사업에 큰 업적을 쌓은 교도에게 주는 법훈으로 원불교 법위 중 네 번째에 해당한다. 고 이건희 회장 천도재는 고인의 등록교당인 서울 원남교당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1030분에 거행되며, 종재식은 오는 1212일 오전 1030분 원불교소태산기념관 대각전에서 열린다

▲ 11월8일 전북 익산 원불교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전산 종법사가 고(故) 이건희 회장의 추도식에서 법문을 읽고 있다  

 

좌산 이광정 상사

 

좌산 종법사(이광정 1936~ , 재임 원기 79116~91113)1936315일 전남 영광군 대마면 북평리에서 부친 광산 이삼공과 광타원 이공원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사물에 대한 연구심이 강하고, 한번하기로 한 일은 반드시 이루어 내고야 마는 정성심으로 어른들의 총애를 받았다.

 

어느 날 집안의 어른인 호산 이군일 선진의 안내로 정산 종법사를 뵙고 자비로운 성안과 밝으신 법문을 받들면서 그 동안 마음속으로 혼자 고민해 오던 인생의 많은 문제에 대한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출가의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좌산 상사는 일과로 득려 한다는 표준으로 스승을 향한 절대적인 신성과 쉽 없는 정성으로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여 대중의 표준이 되었고, 소태산 대종사를 비룻, 역대 종법사의 경륜을 이어 인재육성, 체제정비, 경제기반 확립, 교서번역, 방송국 설립, 국제교화 등 교단 각 분야의 성숙과 세계적 종교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재가, 출가가 다함께 맑고 훈훈한 삶을 나누고 창조할 수 있는 교화, 교육. 자선, 문화사업의 기반을 견고히 하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기사입력 : 2020-11-20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뒤로가기 홈으로

가장 많이 읽은 기사

URL 복사
x

PC버전

Copyright ⓒ 매일종교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