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인류학자 박정진, 한국무예를 집대성하고 신체에 철학을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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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홍 대기자 2021-01-12

전통무예의 집대성 한국의 무예마스터들과 무예의 철학 신체적 존재론동시 출간      

 

무예수련의 핵심은 무엇일까? 결국 마음을 비우는 데에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마음의 중심과 균형을 잡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고래의 천부경(天符經)에 나오는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마음이다. ‘인중천지일의 마음이 되면 몸에 중심이 서고, 어떤 동작을 하던 중심을 잃지 않게 되고, 그런 다음에 몸의 주변, 즉 사방 어디에든 몸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되면 생각 혹은 의식이 가는 데 따라 모든 무예의 동작이 자유자재가 된다. 말하자면 무예의 원천적인 동작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것이다. 무예라는 것은 그것을 터득한 사람이 좀 더 체계화하고 술기를 유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중천지일이 무형(無形)이라면 무예의 술기는 유형(有形)인 셈이다. 이는 자연의 기운생동을 몸으로 실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한국의 무예마스터들의 서문 10쪽 중에서  

 

한국무예의 근원에 대한 탐색과 현재 무예(武藝)의 현실을 종합적으로 조감한 책 한국의 무예마스터들과 무예의 철학적 의미를 현대철학의 차원에서 밝힌 신체적 존재론은 무예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신체에 대한 철학을 철학인류학자 박정진(朴正鎭)이 새롭게 정리한 책들다. 이 두 권의 책은 특히 무예를 천시하는 한국문화의 잘못된 전통을 비판하는 것을 물론이고, 무예문화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예인들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의 필독서로 읽힐 만하다.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충우돌하고 혼란에 빠진 까닭은 우리의 지식·권력엘리트들이 무예정신이 없기 때문이고, 우리의 자생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문화의 내홍(內訌)을 문화인류학자답게 풍부한 문화적 지식과 통찰로 설득력 있게 파헤치고 있는 두 책은 한국문화의 주체성 확립을 위해서도, 한국문화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유익하다.

 

한국의 무예 마스터들은 우리 전통무예의 생생한 역사를 담고 있다. 우리의 전통무예는 우리 민족이 수많은 외침을 받을 때마다 나라를 수호하고 민족을 결속시킨 호국무예로 민족의 혼()과 함께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면면히 배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문인(文人)이 자연과 인간의 보편적인 법칙을 생각과 인문(人文)으로 깨닫고 기록한다면, 무인(武人)은 자연의 기운생동을 몸과 무예(武藝)로 깨닫고 실천한다. 결국 문무(文武)는 하나가 되어야만 온전한 것이 된다. 한 나라에 제대로 된 무예가 없다면 개인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살아가는 것과 같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은 무예철학의 골자인 것이다.

 

문화능력=문력(文力)+무력(武力)’이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지만, 우리는 세계에 하나 뿐인 무경(武經)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의 전통무예를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저자는 과거부터 최근까지의 한국무예를 정리함으로써 단순히 전통무예에 관한 단편적 기록이 아닌, 전통무예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무예정신을 갖춰야 선진적·주체적 독립국가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또 한국이 제창한 무예올림픽인세계 무예마스터십 대회의 세계문화사적 의미와 한류(韓流)의 새로운 아이콘임을 강조한다.

특히 무예마스터십대회를 창안한 이시종 충북도지사 겸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 위원장의 업적에 대해 각별한 성원을 보내고 있다. 기필코 한국이 이 대회를 제창한 것인 만큼 올림픽의 성화가 그리스에서 4년마다 채화되는 것처럼 무예마스터십대회의 성화도 나중에 다른 나라에서 개최될 때에도 한국에서 채화될 수 있도록 국제간에 보편적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 『한국의 무예마스터들』과 『신체적 존재론』의 저자 박정진    

 

한국의 무예마스터들의 자매편으로 함께 출간된 신체적 존재론은 당초 무예마스터십대회의 철학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지만, 동서고금의 철학을 꿰뚫은 혜안이 돋보이면서 세계 철학계에 내놓는 한국의 존재론 철학으로 빛을 발한다.

 

흔히 신체는 정신의 대상으로서의 육체 혹은 물질로 취급되던 것을 저자 박정진은 정신의 대상이 아닌, ‘본래존재로서의 신체를 새롭게 전개함으로써 세계철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 책에서 세계 최초로 설명하고 있는 신체적 존재론은 정신(주체)의 대상으로서의 육체나 물질로서의 신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신체가 육체로 오인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신체적 존재론을 주장하는 것은 신체에 대한 기존의 유물론적 관점에서 탈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립적 위치에 있는 유심론적 관점을 동시에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이다.

 

이러한 신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통해 현상학적인 신체의 현상성과 존재론적인 신체의 존재성을 연결함으로써 신체만이 그 매개(영매)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인간의 삶이 점차 기계화되고,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이나 기계 인간이 태어날 개연성에 직면해 있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아마도 21세기를 지나면 지금보다 더 기계적 환경 속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신체적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는 게 오늘의 상황이다.

 

이러한 신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성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스포츠와 무예의 활성화가 요구됨을 저자는 역설한다. 신체적 존재론은 문화적으로는 무()가 문()에 우선하는 보다 근본적인 존재임을 주장하는 무문(武文)철학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메를로-퐁티의 신체적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또 다른 차원에서 융합한 저자의 신체적 존재론은 독일의 관념론과 프랑스의 합리론의 전통을 극복하고 신체의 실존적 측면을 새롭게 부각하고 전개함으로써 신체가 신()이나 신성(神性)이 깃드는 숭고한 장() 혹은 장소(場所)임을 입증하고 있다. 철학에서의 현상학과 존재론의 화해, 혹은 융합으로 통하는 한국자생철학 1호가 된 박정진의 신체적 존재론은 자연적 존재(본래존재)로서 태어난 인간이 자연을 도구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을 황폐화하면서도 물질만능과 기계만능의 현실로 인해 기계적 환경에 종속되어가는 인류의 현대문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다.

 

저자는 생명은 존재이고, 존재는 신체이다라고 말한다. 신체를 기계로 환원시키고 있는 인간문명에 대한 비판은 현대를 사는 모든 이들이 새겨볼 만한 내용이다. 저자의 철학인류학적 관점은 다른 기존의 철학자들과 달리 <주술-언어-과학>을 관통함으로써 인류문명의 새로운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말한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를 해체하고, 리좀(Rhizome) 철학자 질 들뢰즈를 동시에 해체함으로써 서양철학 자체를 해체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철학적 밑바탕에 도사리고 있는 맹점, 즉 제로 포인트를 발견함으로써 가능하다.”

 

신체적 존재론은 인간의 자연성 회복을 위한 거대한 철학적 도전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인류학적 철학의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이다.

 

전통무예의 집대성무예의 전통과 맥, 그 정신을 탐색한 한국의 무예마스터들

 

박정진의 신저 한국의 무예 마스터들은 우리 전통무예의 생생한 역사를 담고 있다. 우리의 전통무예는 우리 민족이 수많은 외침을 받을 때마다 나라를 수호하고 민족을 결속시킨 호국무예로 민족의 혼과 함께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면면히 배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문인(文人)이 자연과 인간의 보편적인 법칙을 생각과 인문(人文)으로 깨닫고 기록한다면, 무인(武人)은 자연의 기운생동을 몸과 무예(武藝)로 깨닫고 실천한다. 결국 문무(文武)는 하나가 되어야만 온전한 것이 된다. 한 나라에 제대로 된 무예가 없다면 개인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살아가는 것과 같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은 무예철학의 골자인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 하나 뿐인 무경(武經)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의 전통무예를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저자는 무예 올림픽인 세계 무예마스터십 대회 등 과거부터 최근까지의 한국 무예를 정리함으로써 단순히 전통무예에 관한 단편적 기록이 아닌, 전통무예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전통무예의 복원은 우리 민족정신을 되찾는 일  

 

우리의 전통무예는 일제 강점기에 도입된 일본 무도(武道)와 서양에서 들어온 스포츠에 가려 점점 설자리를 잃고 국가로부터도 아무런 지원 없이 방치된 상태에 있었다. 저자는 전통무예의 뿌리를 보존·계승·발전시켜 무예문화유산이 후대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원하며 무예의 역사와 무인들을 탐방한 기록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전통무예는 대체로 조선세법(朝鮮洗法)에 그 중심이 있었고, 나머지는 필요에 의해 요약하거나 재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현실적 필요에 따라 무예인들의 창의력이 섞이기도 했을 것이다. 조선세법은 말하자면 무예의 경지에 오른 장군(將軍)들의 무예였고, 본국검(本國劍)은 전시에 병사(兵士)들에게 필요한 기본 술기들을 재구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세법에서 세법(洗法)의 의미는 발이 먼저 나가면서 칼이 그 뒤를 따른다는 의미이다. 발이 먼저 가고, 그 뒤를 몸과 칼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름을 나타낸다.

 

조선세법은 총66세이다. 여기서 33세를 뽑아 본국검을 만들었으며 수벽(수박)도는 조선세법의 권법 중 8법이 전수된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의 태극권류도 조선세법 검결의 영향권에서 그 일부를 가지고 편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맨손 권법은 사라져가는 무예 환경 속에서도 아리랑을 비롯해서 탈춤 등 여러 춤사위 속으로 스며들어 남아 있다.

 

그렇다면 무예수련의 핵심은 무엇인가. 결국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마음의 중심과 균형을 잡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생각 혹은 의식이 가는 대로 모든 무예의 동작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무예의 원천적인 동작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것으로 무예는 그것을 터득한 사람이 좀 더 체계화하고 술기를 유형화한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 무덕(武德)을 갖춘 진정한 무인들은 드물고, 술기만 남았다는 인상을 저버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진의 이 책은 사라진 전통무예와 잊힌 무예인들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후손들에게 무예의 정신과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책 속으로

 

무예도보통지. 이것은 세계에서도 하나뿐인 무경(武經)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족보 있는 무예를 우리 스스로 썩힐 필요는 없다. 세계사적으로 여러 제국과 영웅호걸들이 지나갔지만, 이러한 무경이 남아 있지 않는 까닭은 무술이야말로 근세까지도 국가기밀이었고, 한방(韓方)의 비방처럼 비밀리에 구전심수(口傳心授)된 까닭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보듯이 당대 기록 정신이 세계적으로도 투철하였던 조선은 억무숭유(抑武崇儒) 정책으로 무술과 무신(武臣)을 멸시하였지만 그래도 기록만은 철두철미하게 하였던 것이다. 주로 침략을 당하기만 한 나라가 당시 동양의 무예를 집대성하여 무경을 만들었다는 것은 실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_19~20

 

태권도의 원류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지만, 고대의 전통무술에 그 뿌리를 갖다 대는 것은 차라리 콤플렉스적인 소산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그보다는 공수도(空手道)를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여 확대 재생산한 것이라는 편이 훨씬 자랑스러운 태도이다. 다행히 오키나와의 당수도가 삼별초에 의해 전래된 무술이라는 그간의 학설이 있었지만 근자에 명확한 사료가 발견됨에 따라 태권도 콤플렉스도 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오히려 일본 공수도의 뿌리가 삼별초의 수박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일본은 한국의 김치를 일본의 기무치로 개발하여 세계적인 상표로 만들지 않았는가. 문화란 원조가 어디인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어떻게 개발하고 시대에 맞게 창안하여 현재의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지금 태권도와 일본의 공수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만큼 태권도인은 긍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_81~82  

 

화랑도라고 하면 누구나 삼국통일을 떠올린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한반도 단일국가 시대를 여는 한편 오늘날까지 면면히 계승되는 한민족정체성을 확립했다. 삼국통일의 한복판에서 통일을 이끈 무예가 바로 화랑도이다. 화랑도라는 명칭은 무예의 술기보다는 정신으로 가치와 의의를 인정받고 있는 무예의 명칭이다.

화랑도는 삼국유사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는 민족혼이 담긴 무예로 화랑도의 계율로 알려진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중국과도 차별되는 신라의 엘리트 철학 혹은 국민윤리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민족사상이다._163

 

국선도는 처음엔 차력(借力)이라는 이름으로 저잣거리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단지 방편이었다. 차력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힘을 빌어서 쓴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정신을 한 점()에 집중하면 인간은 주위에 기운생동하는 힘을 이용할 수 있다. 점을 통해 기운은 들어오고 나간다. 이것은 전파의 안테나와 같은 원리이다.

기운을 모으는 중심은 단전이다. 우주의 기운을 모으고자 할 때는 단전에 의식을 집중하고, 내보내고자 할 때는 목적하는 곳에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 따라서 국선도 수련의 관건은 단전자리를 잘 잡고, 그곳에 기운을 축기하고, 기운의 소통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몸의 기제(機制)를 만드는 것이다. _280

 

영춘권(詠春拳)에서 시작한 이소룡은 실전을 전제로 동양 무예의 여러 장점들을 취하여 결국 절권도라는 새로운 무술을 창안했다. 그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융성하였을 것이다. 절권도는 물의 철학을 무예에 철저하게 구현한 무술이다. 물은 잡을 수도 없는, 가장 자유로운 존재이다.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실천한 무예가 절권도이다. 가장 부드럽고 유연한 가운데 가장 강하고 빠른 무술을 구사하는 절권도.

흔히 브루스 리(Bruce Lee)로 통하는 그는 복잡다단한 중국무술을 절권도라는 단순하고 실전적인 형태로 종합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워싱턴 주립 대학 철학과를 다녔다는 점이다. 그는 유명한 철학자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철학하는 무술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33세로 요절했다. 아직도 그를 흠모하는 인구와 절권도를 애호하는 인구는 많다. 그는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는 무술을 창안했다._309~310

 

태극도가 태극의 원리를 무술에 도입하였다면, 팔괘장은 주역의 팔괘를 도입한 무술이다. 팔괘장은 중국 배우 이연걸이 12역을 한 최후일강(最後一强: The One)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한 무술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선()게이브와 악()율라우가 팔괘장과 형의권으로 대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율라우가 주먹을 위주로 반보씩 전진하면서 형의권을 펼치고, 게이브가 장권으로 위주로 원을 그리며 부드럽고 화려한 팔괘장을 펼치던 장면은 압권이었다. 팔괘장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60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 개항 이후 중국의 관문인 인천은 화교들이 많이 모여 살았고, 자연스럽게 팔괘장의 고장이 되었다._354~355

 

제국의 문화는 대체로 후대에 문화 브랜드로 남는다. 이 말은 제국의 문화는 비록 망하였다고 하더라도 인류문화의 상징으로 여전히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영원한 제국은 없지만 영원한 문화는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제국 가운데서도 후대에 강대국 혹은 선진국을 구가하는 나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나라도 있다. 고대의 이집트, 인도, 그리스를 들 수 있다. 이집트와 인도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 인류에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 또한 신화와 문학, 그리고 철학과 민주주의의 나라 그리스 역시 그 어떤 나라에 못지않은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들 나라들은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후 세계사에서 이렇다 할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위대한 역사와 업적이 무거운 짐이라도 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 세 나라는 공통적으로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그건 바로 힘이다. 과거의 위대함에 비해 지금은 도무지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무력(武力), 즉 무()의 힘을 발산하지 못하고 정체된 채 과거의 유산이나 자랑하며 관광 수입으로 먹고사는 나라처럼 보인다는 것이다._391~392  

 

신체적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철학의 패러다임 제시한 신체적 존재론   

 

신체의 본래존재성(본성)이나 자연 본래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은 과학기술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신체로부터 세상의 모든 일을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행·불행을 좌지우지할지도 모르는 긴박한 일이다. 그러한 점에서 신체적 존재론은 시대정신을 개념으로 잡아내는 철학의 사명에 충실한 것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신체를 잃어버리고 이미 기계화된 환경에서 기계적인 육체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신체적 존재론의 머리말 21

 

인간의 삶이 점차 기계화되고,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공지능이나 기계인간이 태어날 개연성에 직면해 있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아마도 21세기를 지나면 더욱 더 기계적 환경 속에 내몰려질 것이 예상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신체적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는 게 오늘의 인간상황이다. 신체가 바로 존재인 것이다. -Abstract-347

 

저자 박정진은 동서철학을 관통한 철학인류학자로서 인류문명의 자연 망각, 혹은 자연 상실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의 철학인류학적 관점은 다른 기존의 철학자들과 달리 <주술-언어-과학>을 관통함으로써 인류문명의 새로운 전망에 대해 피력한다.

 

신체적 존재론은 동서철학의 밖에서 철학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철학 자체에 대한 반성적 작업으로 신체를 동원하는 가무나 무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철학은 전통적으로 이론(competence, langue, theoria)에 속하지만 인간의 삶이 결국 활동(performance, parole, praxis)이라고 할 때 이 활동이라는 입장에 대한 철학적 권리 회복의 환기를 위해 제시한 것이 바로 신체적 존재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무예마스터십대회의 철학적 기반을 위해 스포츠와 무예의 상징·신화적 성격을 고취시키는 한편 그 성격을 회복함으로써 신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부각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현상학과 존재론을 새롭게 융합한 철학인류학자 박정진의 자생철학

 

철학인류학자 박정진이 신저(新著) 신체적 존재론에서 세계 최초로 설명하고 있는 신체적 존재론은 정신(주체)의 대상으로서의 육체나 물질로서의 신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신체가 육체로 오인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신체적 존재론을 주장하는 것은 신체에 대한 기존의 유물론적 관점에서 탈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립적 위치에 있는 유심론적 관점을 동시에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이다. 특히 그는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질 들뢰즈의 기계주의를 해체함으로써 유물론적 경향의 서양철학 전체를 맹타하고 있다.

 

우리는 신체를 기계로 바꾸고 있는 문명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기계가 우리의 또 다른 신체가 되고 만 현대에 이르러 우리가 깨달은 사실은 신체야말로 존재라는 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신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성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선 스포츠와 무예의 활성화가 요구됨을 역설한다. 신체적 존재론은 문화적으로는 무()가 문()에 우선하는 보다 근본적인 존재임을 주장하는 무문(武文)철학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철학에서의 현상학과 존재론의 화해, 또는 융합으로 한국자생철학을 주창한 저자는 이 책에서 자연적 존재(본래존재)로서 태어난 인간이 자연을 도구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을 황폐화하면서도 물질만능과 기계만능의 현실로 인해 기계적 환경에 종속되어가는 인류의 현대문명에 대해 비판하는 한편, 독일 관념론과 프랑스 합리론의 전통을 극복하고 신체의 실존적 측면을 새롭게 부각시킴으로써 신체가 신()이나 신성(神性)이 깃드는 숭고한 장() 혹은 장소(場所)임을 입증하고 있다.

 

생명은 존재이고, 존재는 신체이다.” 신체를 기계로 환원시키고 있는 인간문명에 대한 그의 비판은 현대를 사는 모든 독자들이 새겨볼 만한 내용이다.

 

책 속으로

 

문화학자들은 처음부터 신체를 소외시키는데 익숙하다. 문화학자들은 상징이나 은유(metaphor)를 비신체적인 맥락(non-somatic context)에서 바라본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레슬리 화이트(Leslie A. White). 상징은 기본적으로 언어의 문제이고, 언어는 비신체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이트는 상징을 상징물(象徵物, symbolate)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언어적인 신체가 가지는 상징성(symbolism)을 간과하는 것은 인류의 문화, 그것도 특히 축제나 의례를 파악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도리어 신체는 비언어적이기(말이 없기) 때문에 더 풍부한 상징, 다원 다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그것을 운반하는 매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_31

 

신화가 신체를 통해 자연과의 교감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상징-의례 체계라면, 역사는 자연과 멀어진 상태에서 개념으로 무장된 역사학자가 기술하는 개성 기술적인 작업이다. 신화가 종교적 특성과 연결된다면 역사는 과학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신화-의례-종교, 역사-(text)-과학의 상관성을 느낄 수 있다. 전자에는 신이 살아있지만, 후자에는 신이 없다._54

 

인간의 문화를 크게 신화(mythos)와 과학(logos)으로 분류하면, 신화의 계열에 시와 신화-신화와 축제-자연과 범신이 있다면, 과학의 계열에 역사와 철학-스포츠와 예술-종교와 과학이 전자의 대칭의 자리에 있게 된다. 이 중에서 스포츠와 예술은 로고스에 속하지만 그것의 신체적(물질적) 특성으로 인해서 가장 신화와 연속성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스포츠와 예술의 언어는 바로 신화의 신체적 언어인 상징적 의례, 혹은 의례적 상징을 부활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화는 비합리적이고 과학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종래의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원주민사회의 현지 조사와 연구를 통해 그들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사고를 해왔음을 보여주었다. 야생의 사고(La Pensé Sauvage)를 비롯한 일련의 구조인류학적인 연구물들이 그것이다. 신화의 상징과 과학의 실증은 서로 다른 합리성의 추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을 인과적(因果的) 신화라고 말한다면 신화는 상징적 신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5~56

 

현대인은 그 어느 시대보다 과학 기술 만능의 시대, 기술 사회에 살고 있다. 기술 사회에 살고 있을수록 예술의 가치에 주목하여야 본래인간의 인간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에 부응할 때 비록 현실적으로는 공인받지 못한 몸이거나 소외된 무예인이 될지라도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무예인의 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신체가 점차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면 무예와 스포츠·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존재 가치를 더 높이게 될 것이다. 신체는 신()이 거주하는 장소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체 자체가 신이라는 관점에서 신체를 성스럽게 바라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존재가 되듯이, 신체를 대상(육체, 물질)으로 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존재가 된다. 그런 점에서 신체적 존재를 깨닫는 것은 한없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깨달음은 항상 여반장(如反掌)인 것이다. -72

 

신체적 존재론은 인류 역사에서 발생한 모든 철학을 벗어나서 바야흐로 존재 그 자체에 도달한 철학이다. 철학이라는 것이 의식의 안(동굴의 안)에서 의식 밖에 있는 사물을 본 결과라면, 철학자는 항상 기존의 의식을 벗어나야 하는 임무(mission)에 직면하게 된다. 말하자면 항상 기존의 의식에서 탈출하는 노력의 연속이 철학사다.

인간의 의식(인식)과 감각이 바로 존재에 대한 동굴의 의식이다. 그런데 이제 철학은 그러한 존재의 안과 밖을 설정한 자체가 바로 철학의 굴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재는 선후(先後상하(上下좌우(左右), 그리고 최종적으로 안팎이 없다는 것을, 인간이 그렇게 바라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체적 존재론에 이르러 깨닫게 된 셈이다. -88

 

결국 이상을 동일성-과학상징성-존재성-로 정리하면, 신체적 존재론은 존재성에 해당하는 존재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체야말로 존재인 것이다. 이것이 신체적 존재론의 결론이다. 신체적 존재론의 신체는 잡을 수 있는 육체(물질)가 아니라, 잡을 수 없는 생성(생멸)하는 신체의 의미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연은 신체적 존재이면서 본래존재다. 역으로 본래존재는 신체적 존재다. 신체적 존재론은 인간을 자연으로 되돌려 놓는 철학이다.

신체적 존재론은 존재론과 현상학을 극복한 제3의 철학일 뿐만 아니라 유심론과 유물론, 유신론과 무신론 등 모든 이원 대립을 극복하는 제3의 철학이다. 신체적 존재론은 살의 철학이고, ‘삶의 철학이고, ‘존재론의 완성이고, ‘원시반본의 철학이고, 한글로 몸 철학의 시작이다. 신체적 존재론의 입장에서 보면 은유는 존재로 향하는 언어이고, 환유는 과학으로 향하는 언어다. -189~190

 

신체적 존재론은 무엇보다도 심신 일원론의 태도에서 출발하지만, 새로운 시대정신과 마음의 중심을 개개인이 온전하게 형성하게 함으로써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것을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신체적 존재론은 종래의 역사적인 실천이나 현상학적인 삶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발을 디디고 있는 땅과 그 땅에서 전개된 역사와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이성과 지식과 개인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신과 신화와 공존을 환기시키는 것이야말로 구원이 되고, 치유가 될 수 있다. 인간은 기술이 발달할수록 반대로 신화와 함께 상징적 삶을 회복할 것을 필요로 한다. 신화와 상징과 신바람과 정령(spirit)이 없는 삶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삶의 도처에서 이용과 이익만을 찾고 의리와 겸손을 찾지 않는다면 삶은 머지않아 지옥이 될 것이다. -256~257

 

동서양 문명의 차이를 천부경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서양 문명은 인간을 중심(기준)으로 하는, 혹은 인간을 지평(地平)으로 삼는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있는 천지중인간이다. ‘천지중인간은 인간 중심적-소유적 사유를 하게 된다. 이것은 물론 오늘의 서양철학으로 보면 현상학적인 차원이다. 이에 비해 동양은 인중천지일의 사유를 한다. ‘인중천지일은 자연 중심적-존재적 사유를 반영하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도 여전히 자연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서양철학으로 보면 존재론적 차원이다.-303

 

철학사적으로 보면 프랑스의 현상학적인 의미의 신체와 하이데거의 존재론적인 의미의 신체를 융합한 신체적 존재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철학으로 보면 몸과 마음이 하나로 있는 의 의미를 계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과 몸은 정신과 육체와 대응되는 의미가 아니다. 몸과 마음은 편의상 나뉜 것일 뿐 둘은 본래 하나이다.

우리는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음의 현상이,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몸의 현상이 몸의 것인지, 마음의 것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이중적이면서 동시에 존재론적이다. 우리 몸은 분명 자연이다. 인간이 언어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344 

 

저자 심중(心中) 박정진(朴正鎭)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 의예과를 수료한 뒤 국문과로 옮겨 졸업했다. 영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경향신문사에 입사,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다가 자리를 옮겨 세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초대 평화연구소장을 지내는 등 40여년간 언론계에 몸을 담았다. 1992년 시 전문지 월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현대시회 제2대 회장을 지냈고, 서울문예상을 받았다.

 

서울시 강남구 대모산에 자작시 대모산이 시탑(詩塔)으로 세워졌고(2002513), 울릉도 독도박물관 경내에 자작시 독도가 비로 세워졌다(200899). 철학의 선물, 선물의 철학(소나무), 위대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살림), 네오샤머니즘(살림) 등 인문학 서적 1백여 권을 저술, 현재는 인류학 토크, 박정진’(115회 방송)을 진행 중이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기사입력 : 202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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