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신라시대부터 한반도 정착 흔적…실크로드 따라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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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홍 대기자 2021-01-13

조선 사회가 보수화하면서 무슬림들 설 땅 잃어한국 사회에 재등장은 한국전쟁 때  

 

무슬림(이슬람교도)이 신라시대부터 한반도에 살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무슬림들이 신라에 반해서 영구 정착하는 일은 빈번하게 벌어졌다. 846년 이슬람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드비가 작성한 왕국과 도로총람에는 무슬림의 한반도 정착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이 등장한다. 그는 신라를 금이 풍부하고 자연환경이 쾌적해 무슬림들이 한번 도착하면 떠날 생각을 않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신라의 수도 경주는 당시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슬람 제국의 바그다드를 거쳐 당나라 장안(長安)까지 이어진 국제 교역망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었다. 광저우, 항저우 등에 집단 거주하던 무슬림 상인들은 항저우에서 일주일 남짓이면 도착하는 신라를 안방 드나들듯 찾았다. 일부는 신라에 터를 잡고 살며 당나라와 무역하기도 했다.

 

이들은 오늘날 한국인 무슬림 6만명을 포함해 모두 26만명에 이르는 국내 무슬림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무슬림의 역사는 1200여 년에 달하는 셈이다.

 

신라 38대 왕 원성왕(재위 785798)의 왕릉인 괘릉(掛陵)’에는 특이한 석상 하나가 묘역을 지키고 있다. 바로 서역인(서아시아인)의 모습을 한 무인(武人)상이다. 신라인들이 조각한 무인상의 섬세한 묘사로 미뤄 볼 때 무슬림들은 8세기 무렵 이미 신라 내에 집단 거주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서울중앙성원  

 

신라 시대에 조성된 고분이나 사찰 등에서 발견되는 아라비아·페르시아산 공예품이나 장식품, 고분에서 출토되는 중앙·서아시아인들의 특징을 가진 토용 등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874년 당나라에서 발생해 10년간 이어진 농민반란 황소의 난이 절정에 이른 시기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처용의 존재도 무슬림들의 집단 거주를 추측하게 한다.

 

공교롭게도 삼국사기에도 이 시기에 생김새가 해괴하고 옷차림과 두건이 괴상한,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네 사람이 동해안에 나타나 왕의 수레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학계에서는 처용이 황소의 난을 피해 탈출한 무슬림 상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슬람 사료(史料)에도 무슬림들이 신라에 집단 거주했음을 시사하는 기록이 다수 존재한다.

 

고려와 원나라의 멸망 그리고 조선과 명나라의 건국에 따라 한반도 내 무슬림 관료 세력은 힘을 잃었지만, 조선 초기 무슬림들은 일반 백성보다는 높은 지위를 누리고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20년 무슬림 상인과 종교 지도자 등이 궁궐에 들어와 세종에게 재물을 바치고 연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국가로부터 주택과 직책, 월급 등을 받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 이슬람이 유교 문화와 큰 갈등을 빚지 않고 공존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교 문화의 영향력이 커지고 조선 사회가 보수화하면서 무슬림들도 점차 설 땅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50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무슬림의 집단 정체성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명맥이 끊겼던 이슬람교가 다시 한국 사회에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 때였다.

 

그러던 19643000여명 남짓에 불과했던 한국의 무슬림 수는 현재 한국인 무슬림 6만명과 외국인 무슬림 20만명 등 26만여 명으로 크게 늘었다. 한국이슬람중앙회도 16개 모스크와 80여 개 무쌀라(예배원)를 산하에 두고 있다.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무슬림 인구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다양해지면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수암(守岩) 문 윤 홍<大記者/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기사입력 :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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