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현의 탐방 스케치●부산 국립해양박물관 ‘불교 바닷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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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현 대기자 2021-02-26

▲ ‘불교의 바닷길’ 전시: 2020 국립해양박물관 기획전시(2020.12.8.~2021.3.1.)     © 황광현
▲ 내전수함음소 경판: 고려 후기 대장도감에서 간행된 재조대장경이다. 대장경은 국민 마음을 통합하고 국가를 수호하는 정치·사회적 기능을 했다.     ©황광현
▲ 바닷길 교류도: ‘보기’ 표기를 참조하십시오     © 매일종교신문
▲ 관음(觀音); 중생(衆生)이 괴로울 때 정성으로 ‘관세음보살’을 외면 그 음성을 듣고 곧 구제한다고 한 믿음이 있다.     © 황광현
▲ 반야용선도: 반야용선은 일반적으로 현실세계와 이상세계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자 다수의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수단으로 그려졌다. 통도사 소장     © 매일종교신문
▲ 감로왕도: 감로왕도는 영혼을 천도하는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불화이다. 보물 제1697호 해인사 성보박물관 소장     © 매일종교신문
▲ 석조관음보살좌상: 오른손은 어깨 높이에서 왼손은 무릎위에서 각각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下品衆生印)을 결정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매일종교신문
▲ 진관사 수륙재(水陸齋): 서울시 은평구 있는 절로 고려 현종 때 창건. 조선왕 때 수륙재를 매년 1월 또는 2월 15일 열었음. 불가에서 수륙의 잡기를 위하여 재(齋)를 올리며 경문을 읽었다.     © 매일종교신문
▲ 구법여행도: 불경을 등에 얹고 구법의 여행을 떠나는 행락 승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매일종교신문

 

“불교가 바다의 중요성 인식하고 삶 자체를 바다에 비유”

 

문명의 여명기부터 인류는 육로와 해로를 통한 다양한 교류를 했다. ·서양의 바닷길은 규모와 경제적으로 육로보다 효율적이어서 7세기 이후는 해상무역의 시대가 열렸다. 조선술과 항해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면서 바닷길은 더 빨라졌다.

 

부산 국립해양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지난해 128일부터 31일까지 불교 바닷길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합천 해인사 내전수함음소 경판(보물 제1806, 고려 고종 32년 대장도감 판각) 등 불교 문화재 76119점의 자료는 각 사찰과 국립중앙박물관 및 시도지정 문화재가 함께 했다.

 

[1] ‘문화, 새로운 사상 수용편에서 불교 경전은 종교적 가르침 외에 새로운 철학, 문학, 의학, 자연과학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인도 고대부터의 풍부한 지식체계와 화장(火葬), 사리 및 스투파(Stupa) 신앙, 불상 숭배 등의 의례문화, 나아가 간다라(Gandhara, 주로 조각)를 통해 전해진 문화는 동아시아에 없는 새로운 체계였다.

 

인도의 불교 경전이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동아시아의 지식과 문화는 더욱 풍성해졌다. 3세기 동진(東晋)의 주사행(朱士行)을 시초로 5세기의 법현(法顯)7세기의 현장(玄奘), 의정(義淨) 등은 불교의 가르침을 인도에서 근본적으로 연구했다. 또한 왕현책(王玄策)은 당의 태종·고종의 사절로서 인도를 4차례 왕래했다.

 

우리나라에 불교는 중국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에 의해 전래돼 고구려 소수림왕 2(372)에 처음으로 공인됐다. 백제는 침류왕(384) 때 남조(南朝)인 동진(東晋)에서 온 인도 승 마라난타(摩羅難陀)에 의해 전래됐다. 신라는 법흥왕(528) 때 불교가 전래돼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2] ‘교류, 바닷길의 바람을 따라편에서 아시아는 기원전부터 육로와 해로를 통해 신앙·언어·예술·의학·특산물·기술·풍속 등을 교류했다. 중국은 세계의 지식과 정보가 모이게 되었고, 불교가 전래됐다. 중국에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경전이 유입되고 왕권 강화 정책으로 불교를 활용하면서 불교문화가 토착화됐다. 순례 승 법현(5세기)이 인도에 가 다량의 경전을 구입해 왔다.

 

우리나라 승려들도 삼국시대(7세기)부터 고려(14세기)까지 불교의 동향 파악, 경전과 불교 용품 수입, 불교 성지 순례를 위한 목적으로 육로와 해로를 통해 구법여행을 떠났다. 13세기 말 원나라가 남송을 멸망시키면서 해상권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해로는 육로에 비해 운송 물량이 방대하며, 천문학과 해구도구 등의 발달로 이동 시간이 단축되어 이용률이 높아졌다.

 

[3] ‘불교, 바다를 향한 간절함편에서는 불교관련 해양 설화, 바다를 통해 전해진 팔만대장경을 소개했다. 중국 후한의 왕충(王充)이 저술한 논형(論衡)에 따르면, 중국은 220년경에 나침반이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바닷길을 통한 해상 무역은 선박과 항해술의 한계와 급작스러운 기후 변화 등으로 위험 요소를 내포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에 의지하게 됐다. 불교 경전에는 바닷길 이용 방법과 제난구제(諸難救濟)의 관음신앙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를테면 법화경(法華經)은 안전한 항해 방법을 제시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기만 하면 위험에서 구제해 준다고 믿었다.

 

또한 불교의 대장경 교류는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활용되었다. 13047월 고려를 방문한 중국 강남의 임제종(臨濟宗) 승려 철산소경(鐵山紹瓊)1306년에 돌아가면서 강화 보문사에 보관되어 있던 대장경 16,000권을 강서성 의춘현 대앙산으로 옮겨갔다. 일본은 태조 4(1395) 해상사고로 인해 발생된 표류인(漂流人)과 해상에서 잡힌 인질 등을 조선으로 송환시켜준 대가로 대장경을 받아 간 이후 지속적으로 대장경을 요구했다. 조선은 국가적 차원에서 대장경을 인출(印出)하여 일본에 전했다.

 

불교 경전에서 바다는 삶과 고통 등 인간의 인생에 비유되고 있으며, 지혜와 깨달음을 통해 바다를 건너는 것으로 해탈을 상징됐다. 또한 이 세상을 마친 후 서방 극락정토에 태어난 것도 바다를 건너는 것에 비유하며, 이에 대한 염원을 수륙재(水陸齊감로도(甘露圖반야용선(般若龍船)에 담아 표현했다.

 

이렇듯 국립해양박물관은 불교가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삶 자체를 바다에 비유했다. 모든 사람과 지식을 공유하며 헤쳐나갈 방법을 깨우쳐 나가면서 극락왕생하기를 바란다며 위로와 염원을 소망했다. <황광현 대기자> 

 

 

기사입력 : 202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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